홍성 홍주산성을 어슬렁거리다. 

이세상 다시 태어나면 필자는 반드시 가무가 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내게 어머니는 '재주가 많으면 고달프다'라며, 지금사는 내모습이 딱 적격이라고 위로하시곤 하셨다. 진작 당신 큰 따님은 어린시절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원으로 무용단원으로 서울시민회관서 피아노발표회까지 했었다는걸, 자랑으로 삼으셨던 기억이 있는데 ᆢ어머니는 그렇게 또 딸내미를 감싸안으셨다. 
 
홍성의 친구는 대학시절친구다. 대학가요제까지 나가고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던 재원이다. 대학시절에도 그녀가 대단해보였던건, 그녀는 그 흔한 막걸리한잔도 넘기지 않고도 가무의 1인자로 어느 대학축제든 1등 분위기메이커 사회자가 되었었다. 그런 그녀가 사관학교에서 주최한 학보사 기자 세미나에서 한 뚝심좋은 생도에게 낙점되어, 끈질기고 아련한 구애끝에 결혼하여 아들 하나 남기고 그렇게 젊은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인의 아내는 두번의 초상을 치룬다. 한번은 일반장례를 치루고 한번은 매달 정한 날짜에 국립현충원에 안장한다. 필자는 지금도 애 아빠를 떠나보낼 때  넋이 빠져, 마치 웃는듯 흐느끼던 친구를 잊지못한다. 그녀는 평생수절하며, 아들하나 반듯하고 훌륭하게 키워놓았다. 작고 이쁘고 인형같던 젊은 과부댁이 살아가기엔 세상이 녹녹하지만은 않았는지, 십여년전에 만난 친구의 소원이 세월이 얼렁가서  '늙는거'였다. ..........
 
 
 
나는 오늘 친구랑 가벼운 운동화에 지갑하나 달랑들고, 걸어  홍주산성을 향한다. 호호낙낙거리며, 가볍게 어슬렁거린다. 친구에게 물었다.어느새 나이먹고 늙으니, 좋으냐고?

 

그 친구는 한마디로 말한다. "'늙고 모양새 망거지니, 껄떡거리는 놈들 줄어서 편안하다'고 ᆢ"
친구의 인생질곡이 내마음에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다다른 홍주산성엔 순교자의 피냄새와 한이 저하늘위로 피어오르는것 같다. 
 
홍주산성을 어슬렁거리며, 사랑제일주의자인 필자의 머리속은 온통 '사랑'이란  울림으로 눈물이 흐른다. 인생으로 태어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작하여 책임이라는 굴레속에  불살라버린 젊은 과부댁의 애절한 청춘과 하늘의 신을 향한 절대사랑에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순교자로 이어진 하늘 아래 두개의 사랑이 홍주산성위에서 피어났다.


'사랑'이 가슴에 사무친다. 시리다! 몹시도!
가슴이 이토록 시려졌으니, 붉은 포도주 한잔없이 어찌 잠을 청하겠는가? 그런밤이 다가왔다. 
 
장항선기차를 타고 홍성역에 내려 10분정도 걸으면, 홍주산성에 이른다. 내포 지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던 홍성읍 한복판에 자리한 홍주산성은, 성 전체가 천주교 순교지이다.  동헌 앞, 옛 저자거리, 홍주 옥(현재의 검찰청 및 법원 자리), 북문 밖, 생매장 터로 사용되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홍성천과 월계천부근 등 사방에 순교지가 있다. 홍주산성의 옛 모습 중에서 성벽과 일부만이 복원되었고, 원형복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들어 공주의 솔뫼성지와 더불어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홍성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조양문인데 홍주산성을 드나들던 동서남북 4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동문으로, 천주교박해 당시 붙잡혀 온 이들이 이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어 성벽 밖으로 던져졌다고 한다. 교회의 순교록과 관변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 홍성 순교자는 모두 212명에 이르고, 무명 순교자를 감안하면 실제 순교자는 7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순교록에 의하면 홍성 순교자는 참수형보다는 교수형이 많았고 생매장된 순교자도 있었다 한다. 2004년 순교성지 발굴이 본격화된 후 2008년 3월 천주교 홍성본당은 홍성군과 함께 순교비를 세웠다. 2011년 6월 새 성당을 지어 봉헌하며, '홍주 순교자기념성당'으로 명명했다.

 

홍성 천주교 성지 순례자가 매주 1000명이 넘지만, 주변여건은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잘 안 돼 있다한다. 관광자원으로서도 훌륭한 정서적ᆞ정신적 문화유산의 홍성을 알리고, 종교순교지로서의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 홍성의 천주교 순교 역사는 다른 지역에서 모방할 수 없는 특별한 자원인데,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지역은 공주며 두 번째가 홍성이다. 그럼에도 홍성은 이제야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순례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장항성 홍성역서 하차하여 도보로 접근이 가능한 접근성도 큰 매력이고, 기차여행의 독특한 낭만과 편리, 안전 때문에 이용자가 늘고 있으며 홍성은 그 조건도 좋고 걸어서 30분 안에 모든 순교터를 볼수 있는 장점도 홍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주변전통시장과 더불어 매일시장도 걸어서 방문 가능하니, 맛난 군것질도 가능할것이다.

 

우리의 순교 성지를 특화시켜 그 역사와 의미를 전국에 알리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도하는것에 대해  열린 종교적 관점이 선행되어야한다.천주교 성지 성역화는 특정 종교문제가 아니다.  천주교 순교사는 우리의 근대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다. 천주교는 양반제도를 허물고 평등사상을 확산시켜 공화제를 실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죽음으로 진리를 증거한 위대한 정신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실학파의 많은이가 천주교인이었고, 천주교의 전래가 우리 근대문화에 미친 영양력을 생각하면 순교지인 이곳의 의미는 크다. 홍성지역은 수십명의 성인을 비롯해 1000명에 가까운 무명의 평민들이 순교당한 지역이다. 충남도청의 내포시대로 급격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홍성지역에서 천주교순교지인 홍주산성주변을 어슬렁거리는것도,가을의 초입에서 누리는 특권이다. 
 
어슬렁거리기 좋은계절.
교통도 산수도 접근성도 좋은, 홍주산성을 어슬렁거려 본다. 
 
이밤은  진한 포도주 한잔 예약해두곤,
필자는 홍성에 오면 즐겨찾는 맛집으로 '소복갈비'집을 향한다.
갈비탕의 진수.예산본점도 유명하지만,홍성점도 필자에겐 통과!
양도 푸짐하여 갈비탕한사발이면, 기분도 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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