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행궁을 바라보고 오른쪽길로 나서, 나혜석길을 어슬렁거리다

나혜석을 탄생시킨 수원!나혜석을 재평가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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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행궁을 나와 나름  신여성이기를 표방하는 두여인(동행친구와 필자)이 짠한 마음으로 어슬렁거린 거리는, 나혜석거리이다. 
 
엄친딸'라는 말이 있다.
엄마친구의 딸...  '엄친아'는 엄마친구의 아들을 일컫는다. 실제뜻은 모든조건이 잘 갖추어진 실력까지 있는 부러운대상을 의미하는데, 팔자좋은 환경을 갖춘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당시 보기드문 '엄친딸'로 용인군수ᆞ시흥군수 등을 지낸 아버지 나기정의 둘째 딸로 태어나, 상류층의 전형적 딸로 1920년대와 1930대를 풍미했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이다. 
 
한국여성 최초로 동경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최초의 여류화가개인전 등 성공가도를 달린 뛰어난 신여성이었다. 역사는 그녀를 화가이자 작가ᆞ시인ᆞ 조각가ᆞ여성운동가ᆞ 사회운동가ᆞ 언론인이라 칭한다. 
 
필자의 어린시절 인기있던 TV드라마중에는, 근대사인물들을 모티브로하는 드라마가 많았다.
주인공으로 윤심덕ᆞ나혜석등의 신여성은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다. 
 
그런 까닭에 사춘기시절ᆞ학창기시절 그녀들은 여성상위시대란 말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할 때 되새겨보는 출발점의 인물이었다.
'신여성'이란 단어만으로도, 도전이며 희망이며 성공이라는 이름이었다. 
 
<매일신보>에 의하면 나혜석은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로, 1921년 서울경성일보사에서 첫 전람회를 열었는데, 이는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전시회로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필자는 먹고 사는것조차 힘겨웠던 그시절 일본유학이 가능했던 집안의 여성이 선택한 학문이 미술이었다는 것에 주목했었는데, 억압된 시대상황상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화폭에 담았을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혜석은 신문학을 존중하는 개화된 가정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도쿄 유학중이던 오빠 경석의 권유로 1913년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했다. 유학시절에는 최승구·이광수와 사귀면서 동경유학생들과 교제하며,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자학교 미술교사를 지냈으며, 박인덕 등과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金宇英)의 오랜 구애를 받아들여 1920년 이례적으로 신식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그를 따라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럽과 미국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여행에 오른 여성'이 되었다.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남편은 영국에서 법학 공부를 했던 세계여행은 그녀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고 서구여성의 진보된 지위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서구 미술사조의 영향을 많이 받아와 국내창작활동에 접목하였다. 
 
파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외교관 최린(崔麟)과의 염문으로 인해, 남편 김우영에게 이혼을 통보받게 되지만 훗날 최린에게도 버림받았다. 김우영과 최린 모두에게 버림받은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후세가 나혜석을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당한 부정한 여인’으로 기억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혼고백서를 통해, 정작 '자신은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조선 남성들을 과감히 비판'하였지만, 여성들에게 한 없는 의무만을 강요하던 그 시절 조선사회에서 나혜석의 이러한 외침이 곱게 받아들여 질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할 때 ‘여성도 남성이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이라며,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제로 내세웠다. 당시 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은 여성이 우위에 섰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었을것이다. 여성상위시대의 표방이후 양성평등표방사회로 이후 최근 역차별이라는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비롯한 신여성들의 외침을 밑거름으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녀에게서 등 돌린 조선사회는 그녀의 소품전 마저 외면하게  되었고, 그녀는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다. 생활고의 고통 속에서 말년을 보내던 그녀는 결국, 서울의 한 무연고자 병동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나라에서 최초로 구미여행을 다닐정도의 부를 구가하던 삶에서, 무연고 병동에서 삶을 마감한 나혜석의 삶을 어떤이는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했던 삶에, 충실했던 선각 여성이다.그녀는 임종전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무어라 평했을까? 
 
나혜석의 비극은 너무나 명석했고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사상과 생활방식이 그 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80여년이 지난 지금,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문학과 그림 모두 뛰어났던 예술가로, 여성인권신장을 외친 여성운동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여성자신이 자신의 성에 대한 주인공이 되어야한다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제시한 선구적 행동이며, 양성평등적사고의 선언이었다. 뛰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박인덕, 김일엽,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재주가 많으면 박복하다고 하던 그 시절에 문재(文才)도 뛰어났으니, 삶의 기폭이 후세의 필자에게 애절하게 느껴지는걸까? 
 
나혜석같은 신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시간,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된다'는 최근의 세인들의 여성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변화된 세상은, 그녀들의 의지로 주어진 선물이다. 
 
한시대를 풍미했으나, 거리의 노숙자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애가 재평가되고 ᆢ


역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나혜석거리를 조성하여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나혜석거리는 수원 태생인 최초의 한국여성 서양화가 '정월 나혜석'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약 300m가량의 문화 거리로 문화예술회관, 효원공원, 야외 음악당 등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로 내 분수대, 음악이 흐르는 화장실, 조경수가 잘 조성되어 있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서 거리 공연과 같은 다양한 볼거리, 주변의 전문식당가로 먹거리가 산재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와 만남이 공존하는 거리이다.

 

주변에는 수원시와 경기도가 지역 일부를 2006년에 음식문화 시범거리로 지정, 삼계탕, 왕갈비, 냉면 등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곳이다. 필자에게 맛있는 음식이 몽땅 좋은 안주로 보이는것은 시대의 풍운아인 나혜석을 같은 여성으로서 한잔의 술로 애도하고 싶은 까닭이리라.


나혜석거리에서 직선으로 쭉 이어진길을 어슬렁거리면, 문화의 거리를 지나 수원역 건너편 먹자골목ᆞ로데오거리로 이어진다.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해질무렵부터 모여드는 인파들사이엔, 화려한 머리스타일, 짧은 치마 ᆢ 자유분망한  젊은 여성들의 활보를 바라보며, 역사의 한편에선 나혜석을 생각한다.

 

어느새 무상한 세월의 희비속을 머무르는 필자자신을 만난다. 수원성의 호기찬 역사 깊은 성곽문화와  활기찬 신세대문화가 어울어지는 현재 수원의 모습도 옅보게된다. 
 
아쉬워하지말고 보내자!이 여름 ᆢ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날ᆢ
어둠이 내릴무렵 낙옆지는 거리를 어순렁거려보다!그 길 한편에서 한번쯤 나혜석을 만나러 떠나보자.


나혜석거리 어슬렁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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