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terview

"그대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나비가 되어 날고싶은 시인 "신영"작가를 만나다....

보스턴라이프스토리는 자신의 꿈을 위해 쉼없이 날개짓을 하는 작은 여인을 만났다.  고향의 어린시절을 아련히 기억하며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는 그녀,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좌절을 추억으로 간직한 그녀, 불같은 사랑을 꿈 꾸며 지금의 남편을 만난 그녀, 아이 낳고 시부모 모시며 낮선 이국땅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그녀, 성장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녀…. 솔직히 이 모든것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한 여인네의 삶이지만 그 삶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위해 굼뱅이의 허물을 벗고 갸냘프지만 힘찬 나비의 날개짓으로 드높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한 여인, 그녀는 말 한다. “ 굼벵이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면 모든 것이 장애물이지만, 나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장애물은 모두가 놀이터가 된다”고… 보스턴라이프스토리는 힘찬 나비의 날개짓으로 자유를 향해 높이 날아가고자 하는 한 여인네의 인생을 진솔하게 담아보고자 한다.

아버지의 풀피리와 함께한 고향의 어린시절

 

경기도 북부 작은 시골마을이 고향인 그녀는 아버지가 쉰에 얻은 귀하디 귀한 막내딸이었다.  늦둥이 막내딸이다 보니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넉넉하지 않은 시골생활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하고픈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유와 풍요 속에서도 그녀는 외로움을 많이 탓다.  위로 언니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언니들과의 나이 터울이 대여섯살씩 났기 때문에 바로 위 언니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함께 갔던 기억이 초등학교 1년 한 해 뿐이었다.  언니들이 바라보는 그녀는 자매가 아닌 그저 아기 인형 정도였을까? 같이 이야기 하고 함께 뛰어 노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혼자였던 어린 시절이 기억 난다고 한다.

그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이었다.  특히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 누어 바라보던 하늘 속에는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시 모이며 온갖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 내던 높은 하늘의 구름들이 있었고 또한 작은 마당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어미 개와 강아지, 뒤뜰 외양간의 송아지와 새끼 돼지들이 그녀의 친구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이런 어린 소녀의 외로움을 알아서일까!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 막내딸을 데리고 강가로 나갔다.  아버지는 강아지풀이 무성한 강가에 앉아 아버지의 주름을 무심히 바라보는 늦둥이 막내딸을 위해 풀피리를 불어주곤 했다.  아련한 기억이긴 하지만 그 시절 아버지의 풀피리 소리는 그녀의 어린시절 속에 남아있는 가장 큰 추억의 소리였다.

그녀가 발표한 "유년의 뜰에 서면"이라는 시 한편이 그녀의 고향집 어린시절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유년의 뜰에 서면   (신영)

 

유년의 뜰을 지나다
봄 아지랑이 곱게 핀 신작로를 걸으며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
앞산 뒷산에는 붉은 진달래 몽우리 틔우는 소리 들리고
마당 가에서는 어머니 발자국 소리 빨라집니다

 

연둣빛 엷은 봄이 찾아오면
냇가의 버들강아지 꺾어 풀피리 만들어주시던 아버지
겨우내 움츠렸던 냇물 소리 졸졸 흐르면
몸살을 앓던 봄꽃들 몽우리를 틔우고
꽃을 피우며 오르는 생명의 소리 들려옵니다

 

어릴 적 뛰어놀던 시골 작은 집 마당도
앞산 뒷산에 붉게 피던 진달래도
파랗게 물들어 가던 쪽빛 하늘도
파란 하늘에 몽실거리던 하얀 뭉게구름도
이제는 모두가 그리움입니다

 

담장에 오르던 이름 모를 담쟁이 꽃들도
뒤꼍 싸리나무 울타리에 끼어 핀 노란 개나리도
촐랑거리며 따라다니던 누렁이도 복실이도
색칠하다 만 연분홍 여린 유년의 뜰에 서면
모두가 고운 추억입니다

고향과의 이별 그리고 늘 친구같은 외로움

 

그녀는 자연을 벗삼아 맘껏 뛰놀던 고향의 어린시절을 뒤로 하고 서울에 터를 잡은 큰언니 집으로 상경했다.  그렇게 시골 부모님과 떨어져 큰언니 집에 살면서 형편이 넉넉치 못함에도 동생이 아닌 딸처럼 보살펴 주던 큰언니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았다.  특히 어려운 형편에서도 기죽지 않고 깔깔거리며 우애 좋은 사남매 조카들을 보면서 많이 부럽고 또 많이 외로웠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살면서 외로움은 늘 친구같았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무나 무턱대고 친구하는 털털한 아이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같은 외로움의 시작은, 어쩌면 연세드신 부모님과 나이 터울이 많은 자매와의 사이에서 오는 '소통의 부재'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려서는 늙은 부모님을 보며 젊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부러웠고, 사춘기가 되어서는 가족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많이 외로웠었다. 그렇게 외로움을 그녀 자신이 스스로 그림자처럼 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외로움을 그녀는 그림으로 풀어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어린시절 강가에 발 담그고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쫒아다니며 뭉개뭉개 피어나는 구름들을 마음 속 그림으로 형상화 하면서 몸 전체로 느꼈던 어린 시절의 자연과 자유 분방함을 그녀 스스로의 그림으로 표현해 낼때 가장 행복했었다. 예술적 재능도 어느정도 있었던지 사생대회에서 큰 상도 받아보고 그림에 소질있다는 주위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패션 일러스트의 꿈 그리고 좌절

 

외로움과 그리움을 그림으로 그려내던 그녀에게 새로운 꿈이 생겨났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패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패션 일러스트가 되고 싶었다.  사춘기 소녀시절 처음으로 가졌던 꿈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 마음대로만 되어 주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응석부리며 하고싶은 일들만 골라하던 그녀에게 세상은 때론 하기 싫은 일들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패션 일러스트로서 뛰어난 패션 감각과 그림 소질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던 그녀에게 대학 입시는 그 외의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었다.  

 

워낙 공부에는 재미를 못 느꼈던 터라 자연을 몸으로 즐기며 자유를 누리던 그녀가 국,영,수라는 틀에 박힌 공부를 해 낸 다는 건 그리 녹녹치 않은 도전이었다.  결과는 낙방…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태어나 처음으로 실패와 좌절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포부와 꿈이 컸기에 한번의 실패로 좌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금 꿈을 향한 도전을 결심할 즈음 새로운 세상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허드슨의 밤 별빛 그리고 사랑

 

재수라는 힘겨운 싸움을 시작할 즈음 알고 지내던 유명 화장품회사 메이크업 강사로 일 하는 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고 디자인에도 소질이 있음을 인정해 준 언니는  메이크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해 주었고 미국에서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해 주었다.

 

꿈 많던 사춘기 소녀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일 수 밖에 없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무언지도 확실치 않았던 그 시절 무작정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꿈에 도취되어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화려한 도시 뉴욕, 맨하튼에서 보낸 그녀의 20대는 인생에서 제일 화려하고 멋진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뉴욕의 허드슨 강가의 바람과 밤의 별빛이 그녀를 사로잡은 가운데 '분장 메이크업'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영어가 힘겹기는 했지만 지긋지긋한 수학이나 과학을 안해도 되니 우선 날아갈것 같았고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예술적 끼를 '분장 메이크업'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행복했기에 무엇을 해도 신이 났던 20대였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도 받았다. 또한 한국에서는 메이크업 학과가 그때 막 생기기 시작했고 방송국이니 메이크업 스쿨이니 전문가가 많이 필요했던 시기라 공부 후 한국에서의 멋진 인생을 꿈꾸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사랑앞에서 또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풋풋한 20대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6살에 미국으로 이민와 한국사람이라기 보다는 미국사람에 가까운 지금의 남편이 허드슨강의 바람과 함께 그녀 앞에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문대 졸업생, 무엇보다 순박하고 착한 그 이기에 그녀는 그를 놓치기가 싫었다.

 

사랑이 먼저냐 꿈이 먼저냐? 둘 다 가질수는 없을까?  그때 당시 그녀에게 인생 최대의 갈림길이 놓이게 된다. 선택은 사랑이었다.  자신의 푸르른 꿈과 사랑하는 이 남자와 맞바꾸는 것이 너무도 힘든 일이었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했고 2년여의 뜨거운 열애 후 결혼을 결정하게 된다.

결혼 그리고 다시 찾아온 외로움

그렇게 그녀는 모든 꿈을 접고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맞이했다.  행복에 겨워 시작한 신혼, 무엇이 급했는지 그 녀는 한해도 쉼 없이 연년생으로 아이 셋을 낳았다.  그이와 세명의 아이가 있었기에 더 이상 접었던 꿈에 대한 미련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행복하면서도 쉽지만은 않은 생활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곁에 있기는 했지만 친정식구 하나 없이 늘 혼자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시댁과의 문화차이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시댁은 일찍 이민와 자리잡은 터라 시댁식구가 한번 모이면 50여명이 넘었다.  거기다 미국문화와는 다르게 유교적 사상이 두터운 가부장적 시댁문화에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늘 어렵고 낮선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세 아이를 키우며 행복과 버거움이 오버랩됐다. 조울증 환자처럼 세상없이 기쁘기도 하다가 너무도 슬픈 그런 우울한 날들이 하루 이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모두가 다 귀찮아지고 남편도 서운했다. 그런 마음의 위로는 늘 나의 하나님이 어루만져주셨다. 그녀에게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남들은 겉으로 보이는 유복하고 행복한 그녀의 생활들을 부러워했다.  똑똑하고 착한 남편에 아들 딸 낳고 행복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행복의 반댓발이 불행이 아닌 것을 그때 알았다.

그저 철 없는 늦둥이 막내가 아내가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그녀를 버겁게 했던 것이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 설거지를하다가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기가 턱 막히는 심정'이 찾아오면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며칠을 묻곤 했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올망졸망 세 아이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었다. 저 세 아이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어 훨훨 못 날아가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그녀 곁에는, 그녀 편이 되어 줄 그 누구도 없는 듯 싶은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다시 찾은 꿈 그리고 등단, 시인으로서의 인생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응어리진 답답한 마음은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이 그리고 시댁식구들이 부여하는 버거움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접어버린 날개에 대한 아쉬움이었다는 것을…  아쉬움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허공에 대한 그녀의 빈 날개짓은 더욱 힘차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날개짓은 날지 못하는 나비의 빈 날개짓일 뿐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시절 돌파구로 찾은 것이 글쓰기 였다. 

 그녀의 답답한 마음과 날고 싶은 욕망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세련된 글이나 문학이라기 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망졸망 그녀를 따라다니던 세 아이가 깊은 꿈나라로 빠져든 시간,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모든 일을 마친 고요한 새벽녘에 그녀는 잠들지 않고 날개를 퍼덕였다.  이 시간 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그녀만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이 이어질수록 그녀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했던 글쓰기가 이제는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것이다.  뭐든 잘 하고 인정받고 싶었고 그 인정이 그녀의 날개짓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날개짓에 대한 보상이랄까? 그녀는 '월간문학21'로 당당히 등단하게 된다.  이후 대구일보, 뉴욕일보,  보스턴코리아 등 각종 신문에 칼럼과 수필, 시를 연재하며 2005년 '하늘'이라는 시집을 필두로 '보스턴 하늘 아래서 뛰우는 편지', '그대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수필집 '살풀이꾼 예수', '나는 춤꾼이고 싶다'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전개해 가며 전문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또 다른 목표, 상담심리 전문가

 

그녀는 시나 수필을 통한 작가로서의 꿈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병행하게 된다.  시인, 작가로서의 글쓰기가 일상의 버거움에 대한 그녀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시작한 혼자만의 날개짓 이었다면 세상에 나온 자신이 세상을 향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날개짓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녀의 내면에서 출렁이는 이 감정들의 갈등과 이슈, 그 갈등과 부딪침에서의 변화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의 버거움과 상처 그리고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그 고민으로 부터의 시작이 '상담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이 상담심리학 공부를 통해 이어지지 않은 곳에서의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별없이 이어주는 역할, 그 소외된 외로운 가슴들과 함께 만나고, 표현하며 치유받을 수 있는 서로로 남기를 소망 한다.

쉰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녀는 상담학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배움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나를 세상에 내 놓았으니 나 를 써 달라"라고 부단이 외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어떤 분야든 자신의 분야에서 아마츄어가 아닌 전문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심(?) 많은 여자이다.  하지만 그 욕심이 탐욕이 아닌 스스로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니 욕심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열정이라고 표현되어야 맞을것 같다.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는 그녀의 상담심리학 공부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으로 때론 한국의 모 신학대학에서 매년 2회씩 상담심리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즉 전문가로 훨훨 날기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끝 없는 날개짓, 이젠 하늘을 향해 날고싶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말 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 세 아이와 내 남편이 있어 내가 지금 저 멀리 저 높은 곳을 나비처럼 날아 다니다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나'를 '나'로 바로 보게하는 것이다."

 

또한  " 나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지만, 하늘의 그분은 늘 나를 귀히 써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것에 큰 두려움은 없다. 그것은 나를 지금까지 끌어내시고 이끌어가시는 그분의 손길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늘이 이끌어 가시는데로 살 것이다. 내일의 두려움없이 그렇게 또 오늘을…."

Boston Life Story

보스턴 라이프 스토리는 보스턴 한인들의 소소한 삶을 정감있게 표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보스턴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사이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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