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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엄마의 이야기

엔지 엄마의 좌충우돌  가~드닝

​최정우

좌충우돌 가~드닝! 6

 

‘봄비는 일비, 여름비는 잠비’라는 말이 있단다.

봄에 비가 내리면 일이 많고 여름에 비가 내리면 낮잠 자기 안성마춤이라나…

올 봄은 유독 비가 많아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비 소식이 들리면 모종을 사다놓거나 무슨 씨앗을 뿌릴까 궁리를 하게 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있노라면 궂은 날씨도 그리 싫지 않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곤 친구가 생각난다.

유독 비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가방 속에 늘 우산을 챙겨다니고 비가 오면 그 우산을 쓰고 학교 근처 골목들과 인적 드문 캠퍼스 언덕들을 정처없이 걷는 걸 좋아하던 친구였다. 그에 비해 나는 비오는 날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배깔고 누워 ‘아르미안의 딸들’이니 ‘테르미토르’니 하는 만화책을 읽는 쪽이었다. 한마디로 비가 싫었던 거다. 갖고 나갔던 우산을 지하철이나 버스에 어김없이 잊어버리고 오는 것도 싫었고, 복숭아뼈에 달라붙는 축축한 바짓단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비오는 날엔 책장마저 눅눅해졌고, 세상의 모든 구석진 곳들로부터 퀘퀘한 냄새가 스며 나오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빗소리뿐이었다.

세상만사 잠잠하게 만드는 빗소리. 낮잠자기 딱좋은 빗소리. 그러니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방콕’ 여행을 떠났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집을 나서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비를 맞고 쏘다니기 시작한 건 그 친구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몇년전에 데려 온 털복숭이 딸내미 녀석 덕분에 종종 비를 맞는다.

비오는 날, 녀석을 데리고 동네 한바퀴를 돌다 보면 당연하게도 친구가 생각나고, 그렇게 걷다보면 또 평소 살피지 않던 것들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빗물에 늘어진 가지들, 퉁퉁 부은 얼굴로 짧은 봄날에 이별을 고하는 만병초꽃, 올망졸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모란꽃 망울들…그리고 자리공 나무의 어린 순.

장록 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자리공의 새순은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눈에 잘 띈다. 짙어지는 녹음 속에서 연하디 연한 연둣빛을 새초롬 내밀고 있는 폼새 때문이리라. 혹은 비오는 날이면 하늘 보다는 땅을 내려다보고 걷는 버릇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내가 장록 나물을 뜯는 날은 대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침 산책 길에서다.

 

한국에서는 한때 미국 자리공이 너무 많이 퍼져서 생태계 교란 식물이라는 오명까지 썼던 적이 있다고 한다. 씨앗과 뿌리에 독이 있어서 한방에서는 뿌리를 법제하여 약재로 썼다고 하고, 미국 원주민들도 자리공을 민간요법에 썼다고 하니 ‘잘못 먹으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 조금 위험한 식물임은 분명하다. 미국 이름은 poke weed, poke sallet, poke salad 등으로 불리며 주로 미국 남부 지역에서 음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조심성 많은 이들은 장록나물을 요리해 먹으려면 끓는 물에 두번 정도 삶아내어 독기를 빼라고 충고하고, 무릎 높이 이상 자란 장록나물은 먹지 말라고 한다. 또 순을 꺽을 땐 직접 손으로 만지지 말고 장갑을 끼라고 까지 충고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만,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감수하고 먹을만큼 장록 나물이 그렇게 맛있을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겉으론 다른 나물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약간 쌉싸름하고도 시큼한 맛이 독특하다.

내가 장록 나물에 대해 알게 된건 몇년 전 방문하신 고모님 덕분이었다. 그 해 봄, 고모님이 무친 장록나물을 커다란 양푼에 넣고 비빈 밥을 먹으며 둘이서 하하호호 참 많이 웃었다.

그 뒤로 전화 통화를 할 때면 ‘고모, 장록 나물 먹고 싶어요’ 하고 가끔 어리광을 부린다.

 

그리운 것들은 어떻게든 곁에 머물기 마련인 듯하다.

보고 싶은 친구는 언제나 빗속에 있고, 고모님의 얼굴은 쌉싸름한 장록나물의 뒤끝처럼 언뜻, 그러나 또렷히 남는다.

 

*장록 나물 레시피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전수하자면)

끓는 물에 데친 장록나물 한주먹 기준으로,

고추장 쬐끔, 간장 쬐끔, 참기름 넉넉히, 참깨 적당히, 넣고 조물락주물락 무치면 된단다.

장록나물 어린 순.

장록나물 무침

장록나물 열매 맺힌 모습(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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