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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복의 영시(英詩)  산책

장용복 선생님은 지난 4년간 뉴잉글랜드 한인회보에 <오페라 산책>, <서양 명화 산책>, <서양 고전 문학 산책>, <한국 서예 산책> 등을 기고하여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제공해 왔습니다. 작년(2016년) 말에는 심장마비로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완쾌되기도 전에 집필하신 <장용복의 영시 산책>을 보스턴라이프스토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17회 던 (John Donne 1573-1631)

오래 전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가 있었다. 전에 소개한 에즈러 파운드 처럼,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문학 활동한 엑스팻(expat)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이 영화화된 것이다. 주인공 쿠퍼는 성공적으로 철교를 폭파하였으나 적의 치명적인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청순한 연인 버그먼은 쓰러진 그의 몸에 매달려 울며 떠나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옆에서 같이 죽으려고 하지만 그는 "당신 속에 내가 있어. 그러니 우리 둘을 위해 당신은 떠나야 해." 그녀는 동료에게 강제로 끌려 떠나게 되고 그는 쫓아오는 적군을 막으려고 최후의 기력을 다해서 총탄을 퍼붓는다.

 

    이 소설의 제목은 영국의 성직자이자 작가였던 던(John Donne 1573-1631)이 쓴 <명상 17>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던이 50세가 되었을 때 큰 딸을 잃고 자신도 병으로 죽을뻔하다가 살아나서 병 요양 중에 건강, 고통, 병에 관해서 명상하고 기도를 많이 했다. 이것이 <다가오는 기념일에 부치는 기도>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워낙은 시가 아니고 산문이지만 시의 형태로 고치면 훌륭한 14줄의 소네트가 된다.

<명상 17번>

Meditation XVII

 

어떤 사람도

그 자체가 전체인 섬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흙 한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는 곶 하나가 씻겨나가는 것이나

당신의 친구의 땅이나 당신의 것이

씻겨 나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애도하려고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 묻지 마라,

바로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 (No man is an island) 란 무슨 뜻인가? 섬은 넓은 바다에 홀로 있으면서 대륙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 자체가 전부인 것이다. 인간은 인류에 속하고 있으니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 말로, 독불장군이 없다는 뜻이다. 작년에 영국이 유럽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 브렉싯(Brexit)운동은, 영국의 지리적 조건, 즉 유럽 대륙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영국이라는 섬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 문구는 수도사 머튼(Thomas Merton)이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썼고 지금까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종은 시간을 알리려고 치는 종도 아니고 결혼식을 알리려고 울리는 종도 아니다. 장례식을 알리려고 치는 弔鐘인 것이다. 그래서 조종이 울리면 나의 일부가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죽었는지를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또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암시하고도 있다.

 

    던의 <죽음아, 거만 떨지 마라>를 소개한다. <신성한 소네트>에 나온다. 그가 죽은 후 2년 만에 출판되었지만 10여년 전 부인이 죽고나서 썼으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위에서 감상한 <명상17번>은 불가피한 죽음을 인정했지만 <죽음아, 거만 떨지 마라>는 죽음에 도전하고 있다.

 

<신성한 소네트 10 >

Holy Sonnet X

 

죽음아, 거만 떨지 마라. 네가 힘세고 무섭다고

혹자는 말하지만 너는 그렇지 못해;

가련한 죽음아, 네가 사람들을 굴복시킨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죽지도 않거니와 나를 죽이지도 못 하거든.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e not so;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

 

단지 네 사진이라 생각할 수 있는 휴식과 수면을 취하면

즐거움이 많지; 너로부터는 더 많은 즐거움이 흘러 나와.

우리 중 제일 선한 사람들은 가능한 한 일찍 너와 동행해서

그들의 뼈를 쉬게하고 영혼을 구제하지.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

 

너는 운명, 우연, 왕이나 절박한 사람들의 노예일 뿐이야.

그리고 독약, 전쟁, 질병에 매달려 있고

그리고 아편이나 마법도 너같이 우리를 잠들게 할 수 있어

너의 토닥거리는 것보다 더 잘 재우지. 그런데 왜 뽐내니?

 

Thou'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

And poppy'or charms can make us sleep as well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

 

잠깐 눈을 부치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지,

그리고 죽음이란 없는 거야; 죽음아, 네가 죽는거다.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話者는 죽음을 擬人化하여 죽음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네 생각에는 네 마음대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서 거만 떨고 있지만, 우리를 죽이지 못해. 우리는 운명에 의해서나 갑작스러운 사고로도 죽고, 포악한 왕들의 명령으로도 죽고 자살해서도 죽는다. 뿐만 아니라 독약이나 전쟁이나 질병 때문에도 죽고 아편이나 마법에 걸려서도 죽는 것이지 네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너를 거울에 비추어 보면 휴식과 수면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휴식과 수면을 통해 차라리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너 자체로 부터는 더 즐거움을 느낀다. 잠깐 눈을 부치고 깨어나면 (즉 죽어서 연옥에 있다가 마지막 심판날이 오면) 영원히 살아난다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에게는 죽음이란 없는 거야. 죽음아, 네가 죽는 거야. 이렇게 던은 죽음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12행에 나오는 stroke 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잘 자라고 아이 머리를 쓰담아준다거나, 칼로 내리친다거나, 죽음을 알리려고 시계가 종을 친다 등이다.

 

    페트랄카 형식의 소네트이다. 14행으로 되어 있고 예외는 좀 있지만 각 행은 弱強四步의 8 음절로 되어 있다. 각운은 abba abba cddc aa 로 되어 있다.

 

    던은 영국 국교로 개종하려 들지 않은 로마 카톨릭 교인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는 3개월 만에 부유한 호래비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교육도 잘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다. 공부를 마치고는 상속받은 유산으로 여인들과 방탕한 생활도 하고, 문학에도 심취하고 여행도 많이 하였다. 드디어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25세가 되었을 때 상관의 조카 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상관도 그녀의 아버지도 맹렬히 반대를 하였기 때문에 둘이 몰래 결혼을 하였다. 그래서 직장도 잃고 감옥에 들어가기 까지 하였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16년 동안 아이를 12 낳았다. 그러니까 대부분을 임신과 젖먹이는 일로 지낸 셈이다. 그중에 3명이 죽었는데 던은 "풀칠해 주어야 할 입이 없어져 부담은 줄었지만 아이를 묻을 돈이 없구나" 라고 탄식을 했다.

 

    부유한 귀족들에게 글을 써주면서 간신히 연명하였다. 가톨릭교에서 영국 성공회로 개종한 후 가톨릭교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왕의 신임을 받았고 왕명에 의하여 성공회의 성직자가 되었다. 사제장으로 있으면서 훌륭한 설교로 명성을 날렸다.

 

    던은 형이상학적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속세의 일을 주제로 삼지 않고 신, 창조, 후세와 같은 불가사의한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트를 자주 이용하여 커리즈마와 창의력을 보여주었다. 한 때 빛을 잃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서 예잇츠와 엘리엇에 의해 재 조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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