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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성당, 공세리성당을 어슬렁거리다

1호선 온양온천역에서 버스환승 인주면 공세리하차ㅡ대중교통이용 접근이 용이하며, 온양온천역에서 환승버스가 다양하여 편리하다.  
 
요즘 필자를 만나는 사람들의 첫 마디는 "왜 그렇게 탓어?"라는 말이다. 필자의 햇볕에 그으른 촌년 스타일피부는, 잡티하나 없이 하얀백색피부를 구가하는 한국 귀부인스타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기때문이다. 굳이 피부샵에서 선탠을 한것도 아닌데, 왜 촌스럽게하고 다니냐는 속뜻이 있다. 필자인들 한국에 살면서 굳이 개성을 내세워 검은 피부의 멋스러움을 주장할 까닭도, 자신을 가꾸지 않고 버틸용기도 없었지만ᆢ 새까메진 까닭은, 대책없었던 봄날의 여행탓이다. 
 
외동이 아들놈이 스몰결혼식을 한다며 번개불에 콩구워먹듯  조촐하지만 자신들의 스타일이 확연하게 들어난  전통혼례를 마치고 3일만에 텍사스로 돌아가고, 곧 예쁜며느리도 뒤따라 유학길에 오르고 보니 우습게도 얕은 우울감에 젖은것이 사실이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던 계룡산밑의 지난겨울을 보내고 나니 중년의 몸집은 불어있고 덕분에 더 움직이기가 귀찮아져 있던차에, 봄바람이라도 맞아야한다며 내손 잡아 이끌던이는 1년먼저 결혼시킨 아들 친구엄마였다.외동이 아들친구엄마들끼리의 동병상련이라고 하나? 
 
엉겹결에 이끌려 떠난 아들친구엄마와의 스페인여행은 맑고 청명한 하늘과 스페인의 강렬한 햇볕을 선크림도 없이 흠씬 맞고 다니는 여행이었다. 겨울내 일조량의 부족에 시달리던 구라파의 멋쟁이들이 하늘의 선물인 봄날 태양아래, 챙넓은 모자와 파라솔로 가리고 심지어 얼굴마저 마스크로 가린다는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 구라파인 사이에서 봄날 초장에 그을러진피부가 계속이어지다보니, 그야말로 까무잡잡하다. 촌스럽기는 해두 초장에 그을려지다보니 올 여름은 그저 큰 신경쓰임 없이 햇볕에 나를 내놓기에 주저함이 없었으니, 어슬렁거리기엔 최상의 마음가짐이 될수 있었다. 세상을 사는것은 또 이래서 좋은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년건강을 위해서 실내에서 앉아있는 화이트칼라의 삶을 과감히 버리고, 햇볕을 두려워말고 어슬렁거리는것이 최고의 건강한 삶의 비결이다. 굳이 의사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무릎 싱싱할때 한곳이라도 더 어슬렁거리며, 눈속에 머리속에 맘속에 카메라속에 담아두자하는 생각이다. 
 
스페인여행의 80퍼센트는 성당(모스크)관광이었다. 종교로 점철된 유럽의 역사는 성당을 어슬렁거려야 그 지역과 역사 ᆞ문화를 알 수 있다.스페인의 멋지고 웅장하고 화려한 많은 성당들을 돌아보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필자가 천주교인이 아니다보니 명동성당 등 서너개외의 성당외엔 방문해본 기억이 없었다. 신교도냐 구교도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성당은 한국의 근대문물전래의 시발점인것을 간과한것이다.
필자의 공세리성당의 어슬렁거림은 봄날스페인에서의 생각을, 실천하는 첫 관문과 같은곳이었다.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인주면 공세리 언덕 위에 세워진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본당으로 초기 선교사들이 서해안포구에 상륙하여 전교를 시작한 곳으로 1894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1895년 6월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하여 청주, 옥천 등 39개 고을의 조세를 조운선을 이용하여 서울의 경창으로 보내던 공세 곶고지가 있던 곳이다. 
 
처음에는 동네가운데 민가(한옥)를 교회로 사용했으나 1897년에 사제관이 세워졌고 본당은 1922년에 완공되어 충청남도 최초의 본당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공주 본당, 안성, 온양, 둔포 본당이 분할되었다.  성당경내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3인성인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429.75m²(130평) 규모의 본당과 사제관, 피정의 집, 회합실 등이 있으며 수백년 된 느티나무와 각종 수림으로 쌓여 있어 경관이 매우아름다운 천주교성지다. 

 

충청도 내포지역에 위치한 공세리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드비즈(Devise)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또 1905년에는 조성학당(1927년 폐쇄)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감독하여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양식의 서양식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신부는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하였고, 1971년 에는 13대 주임 김동욱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공세리성당은 너무나 아름다운 성당이다. 필자에게 한국천주교사에  중요한 성지이기도 한 공세리성당은, 지난여름 병원신세를 지고 나온 
다음주 친구들의 위문방문으로 마침 아산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영식의 안내로 이루어졌다. 
 
멋지고 역사깊고 아름다운성지를, 친구들과 어슬렁거리니 더 좋았다. 어린시절과 청춘시대를 안주삼아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사십여년을 더 보낸 친구들과 어슬렁거리며, 수다떨며 깔깔거리는 재미는 어슬렁거림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또 한장의 추억을 쌓는데는, 종교여부와 무관하였지만 천주교 영세를 받은 친구들의 설명을 들으니 더 즐겁다.


무엇이든 아는만큼 보이는것이다. 
 
공세리성당은 성지답게 방문객이 많다. 대게는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개념의 방문자가 많지만, 이곳의 아름다운경치는 그간의 몇몇 매체를 통해 영화의 한폭한폭 새겨짐이 많았던곳이다. 유독 카메라를 손에 든 젊은연인들도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불리는 곳!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아내가 돌아왔다’ 등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곳. 가족과 연인이  드라마속의 한장면을 연출하며, 멋진사진ᆞ추억을 남기고 싶어하기에 충분한곳이다. 
 
의약품이 넘쳐나는 시대의 신세대들을 제외하고, 우리의 어린시절에 익숙한 약으로  '고약'이 있다.그중 '이명래고약'은 고약의 고유명사로 사용될 정도 이다.어린시절 이명래고약 한번 접하지 않은  중년이 있을까? 
 
이 성당엔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1900년 전후, 아산 지역엔 종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모습을 안타까워한 드비즈 신부는 나름대로의 의약지식을 활용해 종기퇴치약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신통하게 종기는 곧 나았고 신비스런 약이 되었다. 
 
당시 공세리 성당에서 심부름을 하던 10대소년 이명래가 있었는데, 드비즈 신부로부터 열심히 고약 조제법과 치료법을 배웠고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1906년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아산에 ‘명래한의원’을 개업했고 한 시대를 풍미한 ‘이명래 고약’은 공세리 성당에서 그렇게 탄생했다. 덕분에 부를 축척하게 되었고 고약과 성당은 어느새 닮은꼴 처럼,주변을 이롭게하는 명사가 되었다. 
 
성당 한쪽엔 박물관도 있는데 사제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다. 박물관엔 성당과 순교의 역사, 성당 건축 과정, 이명래 고약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드라마 가운데 대표작의 관련 영상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공세리 성당은 언제 가도 아름답다. 뜨거운 여름태양에 빛나는 붉은 벽돌도 좋고,  낙엽지는 큰 나무밑에서 바라보는 건물 외벽에 드리운 고목의 그림자도 환상이다. 성당주변에는 서너개의 성당순례자를 위한 파생식당들도 있다. 온양온천역 앞엔 멋진 장구경도 가능한데  매월 4일 , 9일에 온양온천역 온천시장 등 풍물 5일장이 선다.

 

역주변에서 구입했던 천안호두과자를 커피와 로드카페(rod caf'e)를 열고, 노을멋진 공세리성당을 친구들과 바라보니,더 좋았던 공세리 성당.
강추!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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