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이게 참 재미난 운동이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특히 골프라는 운동은 왠만한 집중력과 노력 없이는 원하는 만큼의 점수가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나 같은 주말 골퍼들은 스트레스 풀려고 골프치러 갔다가 스트레스 왕창 쌓여 돌아오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맘 먹은데로 되지 않아 더 재미있고 다음에 가면 꼭 더 잘할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어 더 자주 필드에 나가고 싶게 만드는 운동이다.
또한 현격한 실력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글골퍼나 나나 실력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운동이다. 스윙폼도 그렇고 싱글골퍼나 나나 OB, 헤저드(HAZARD), 벙커(BUNKER) 똑같이 할 짓 다 하는데 희안하게 타수를 헤아려 보면 누구는 파(PAR)이고 누구는 꼭 보기(BOGEY)나 더블보기(DOUBLE BOGEY)이다. 도데체 이유가 뭘까? 한홀 한홀 끝날때 마다 이유에 대해 의문만 품지 그게 바로 실력차라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의 실수만 조금 줄이면 나도 곧 싱글골퍼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며 필드를 나서게 하는 희안한 운동이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번 5번홀은 싱글골퍼와 주말골퍼인 나의 차이점과 늘 점수차가 날 수 밖에 없는 그 이유를 찾기위해 ‘실력과 위기극복’이란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전 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한달에 한번 친구들과 라운딩을 한다. 멤버의 구성을 살펴보면 아주 잘치는놈 1명, 그저그런놈 2명,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놈 1명 이렇게 4명이 모여 골프라는 것을 함께 한다. 이런 팀 구성은 내 친구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골프팀 구성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 5번홀에 다달았다. 싱글치는 놈이 티박스에 오른다. 참고로 골프에도 치는 순서가 있다. 홀에서 초구를 치는 사람을 아너(Honor :명예)라고 하는데 이는 전홀에서 타수를 제일 적게 친 플레이어가 차지하게 된다. 만약 전홀에서 동타가 나왔으면 그 전홀 타수를 따져 Carried Honor라는 이름으로 초구를 치게된다. 여기서 초보자들이 주의할 점은 오너(Owner)가 아니고 아너(Honor)라는 점 착오 없길 바란다.
티박스에 오르니 캐디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 한다 “이번 홀은 슬라이스홀이고 오른쪽이 OB인 파4 미들홀입니다.” 싱글골퍼가 이것저것 지형을 살핀 후 힘차게 샷을 내 지른다. 볼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솟아 오르더니 오른쪽 OB지역으로 급하게 내 달린다. OB다… 아! 이게 왠일.. 겉으로야 “에고 OB네.. 너도 OB가 다 나네” 하며 안타까운듯 말 하지만 속으로야 “이게 왠떡! 잘 하면 이번홀은 내가 승리한다”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슬라이스홀이란다. 최대한 안전하게 가자… OB만 안나면 내가 두타이상 앞선다. 힘것 내지른 나의 샷은 ‘오잘공(오늘 제일 잘 맞은 공)’ 페어웨이 중앙으로 쭉쭉 뻗어 나간다. 이겼다. 하하. 나는 섣부른 승리를 확신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이번홀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안았다. 골프란 운동은 홀컵에 땡그렁 소리가 나야만 그 홀이 끝나는 운동이다. 이제 OB를 낸 싱글골퍼는 골프장 로컬룰 규정상 OB티에서 4번째 샷을 한다. 아! 볼이 그린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포(4)온이다. 홀컵에서 약 15야드 떨어진 먼 거리지만 그래도 그린에 볼을 안착 시켰다. 그렇다면 나는? 세컨샷이다. 그린에만 올라가면 두타 앞선다. 하지만 내 실력에 투(2)온이 그리 쉬울까! 티샷이 잘 맞으면 세컨샷이 난조를 부리는건 아마추어 골퍼들의 숙명이다. 나 역시 그린 왼쪽 깊은 러프로 볼이 흐른다. 세번째 샷에서야 겨우 그린에 올린다. 말이 그린이지 홀컵을 훨씬 지나 프린지(FRINGE: 그린에 인접해 있는 외곽 지역의 짧은 잔디 지역) 근처에 겨우 머무른다. 그래도 같은 그린, 나는 쓰리온, 싱글골퍼는 포온, 내가 아직 한타 앞선다. 내 볼의 위치가 좀 더 멀리 있지만 싱글골퍼도 어차피 한번에 넣기는 쉽지 않은 거리다.
그렇다면 무리하게 퍼팅을 할 필요가 없다. 같다 붙이자. 소심하게 퍼팅을 하다보니 홀컵 근처에서 볼이 선다. 기미(GIMME : 홀과의 거리가 너무 짧아서 치나 마나 들어갈게 뻔할 경우 치지 않아도 인정해 주는 퍼트)거리가 안된다. 아마추어들이 제일 어려워 하는 2미터(약6.5피트) 거리에 내 볼이 서 있다.
다음은 싱글골퍼의 퍼팅차례, 평소보다 훨씬 시간을 소요하며 그린 경사면과 굴곡을 세심히 살핀다. 홀컵과 자기공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거리를 측정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리고 볼 앞에 자세를 잡는다. 마침내 일고의 주저함도 없이 퍼팅을 한다. 볼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다. OB를 내고도 보기(BOGEY : 한 홀에서 기준 타수보다 한 타수 넘는 점수)로 막는다. 기가 막힌다. 이겼다고 확신하던 내가 이젠 반드시 이번 퍼팅을 성공시켜야 같은 보기로 겨우 비기게 된다. 완전히 전세 역전이다. 아마추어들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2미터 퍼팅, 더욱이 상대방의 먼거리 퍼팅을 지켜본 후 치루는 퍼팅,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쌓인 퍼팅… 이게 내 실력으로 들어갈리 만무다… 역시 볼은 홀컵을 약간지나 멈춰선다. 상대방의 OB에 쾌재를 부르며 승리감에 도취된 이번 홀에서 ‘더블보기’로 역시나 싱글골퍼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번 홀 플레이를 되짚어 보자. 위기에 처한 싱글골퍼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위기탈출에 온 정신을 집중시킨다. 첫번째 샷의 미스를 보완하는 두번째 샷을 위해 그는 클럽의 선택, 지형지물, 그린에 꽃힌 핀의 위치까지 세심히 확인하며 최선을 다 한 샷을 날린다. 반면 나는 어떠한가! 방향은 잡아 보지만 어디 내가 맘먹은데로 볼이 가긴 하나! 대충 근처만 설정하고 샷을 날린다. 그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경사면, 오르막 내리막, 거리 등 모든것을 고려하고 계산한 후 정신을 집중해 퍼팅을 성공시킨다. 그럼 나는? 오르막 내리막정도만 어설프게 그린을 읽는척 하다 대충 홀컵 근처로 가는 정도로 퍼팅을 한다. 이게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 또는 싱글과 나와의 부정할 수 없는 실력차이라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골퍼들 사이에 이런 말들이 오간다. "골프 싱글 되려면 집 한채는 말아 먹어야 된다." 다시 말해 골프에서 싱글이 되려면 많은 노력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골프채 쥐고 건성건성 필드에 나가 시간 때운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과 경험이 실력으로 나타나게 되며 그 실력은 위기에서 큰 빛을 발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골프 싱글 땅따먹기처럼 쉽게 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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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도 골프와 마찬가지로 많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 나가느냐가 그 사람의 실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실력있는 인재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골프 싱글이 되기 위해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처럼…
컨설팅회사에서 인터넷벤처들이 모여 만든 정보통신부 산하의 비영리협회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정통부로 부터 기업 정보화에 대한 사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생 협회로서 이번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주체로 선정되어야 회원사에게도 면이 서고 무엇보다 정통부로 부터 인정을 받아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나 였지만 "그저 컨설팅 회사에서 매번 작성하던 컨설팅 기획서 처럼 작성하면 되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쉽게 생각하고 하루 반나절 만에 뚝딱 기획서를 작성했다. 마치 골프에서 지형지물, 바람의 세기와 방향 등 모든 조건을 세심히 살피고 샷을 준비하는 싱글골퍼와 다르게 그저 대충 치면 어디까지는 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샷을 날리는 '나' 처럼 그저 현란한 문구와 눈에 확 뛰는 몇개의 도식만을 이용한 껍데기 기획서에 불과했다.
하루 반나절만에 뚝딱 만든 어설픈 기획서를 가지고 정통부 담당 과장과의 회의를 진행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열심히 썰을 풀어본다. 하지만 정통부 과장이 땅따먹기로 오른 자리도 아니고 헛점 투성이인 기획서를 보고 하나 하나 지적하기 시작한다. "다 좋은데 이번과 같은 사업의 경험이 있는지요? 또한 어떻게 진행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잘 보이질 않네요," "그리고 사례가 많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포함해 서 다시 작성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치 티샷에서 OB가 난것과 같은 위기 봉착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을 뿐 더러 과장과의 첫 대면부터 신뢰를 잃은것 같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정통부 과장과의 회의결과를 내 직속 상관인 본부장에게 보고한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 다시 작성해서 보고 하라는데요?", "우리가 생긴지 얼마 안되서 정부사업 경험도 없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가만히 듣고있던 본부장이 기획서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지시한다. "지금 이번 일에 참가시킬 만한 회원사 몇개를 추려 실무자들 회의를 소집하세요", "그리고 그 실무자들에게 이번 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설명한 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 것인지 알아보고 또한 회원사가 가지고 있는 기업정보화 경험이나 사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서술하라고 하세요" "그런 후 회원사별 사례와 경험을 이번 기획서에 포함시켜 과장에게 다시 보고하도록 하죠." 그런 지시를 내리고는 정통부 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연결한다. "아! 과장님 오늘 시간 되시나요? 저녁이나 함께하시죠. 드릴 말씀도 있고 오랫만에 편하게 과장님과 술 한잔 하고 싶네요…" 과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고는 서둘러 약속장소로 이동 준비를 한다. "어이 박부장! 같이 가자…"
본부장의 포스에서 짬밥과 경륜이 함께 뭍어 나온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일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몸에 벤듯 하다. “대충 이정도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역시 계급장은 가위, 바위, 보로 따내는 것이 아닌가 보다.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자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나 능력을 최대한으로 정검하고 이를 총동원 하여 활용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업무 외적인 인간적 측면까지 고려해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다시말해 모든 역량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경험과 위기대처 능력이 실력이고 그 실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나는 깨달았다.
직장인들 사이에 이런 말들이 오간다. "부서장이 사원보다 괜히 월급을 더 받는게 아니다.” 한 단체나 기업의 운영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경륜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또한 그 경험과 지식을 통해 위기대처를 위한 정확한 의사결정을 지시할 수 있게된다. 그것이 바로 ‘실력’이고 이 실력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훈련과 노력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마치 골프 싱글이 되기위해 매일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골프 동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며 시간 될 때 마다 필드에 나가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