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골프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아마도 축구, 농구, 야구 등 다른 운동처럼 상대가 보내온 볼에 반응하는 운동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자신만의 볼을 온전히 자기 자신이 콘트롤 하는 운동이기에 그런가 보다. 또한 골프는 "신사의 운동"이라고들 한다. 이는 다른 운동경기와 다르게 심판이 반칙 휘슬을 불지 않더라도 자신의 타수를 벌타와 함께 자기 스스로 거짓없이 카운트해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지만 골프도 상대가 존재하는 엄연한 운동경기이다. 물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경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가 없다면 영 흥도 신도 안나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골프에도 항상 경쟁관계가 존재하게 되며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어느 운동보다 자신의 성향이나 성격은 물론 상대방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운동이다.
골프 전문가도 아니니 서론은 집어치고 나의 4번째 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번 홀은 "경쟁"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골퍼들은 어마어마한 상금을 놓고 경쟁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마츄어 골퍼들은 소위 내기를 통해 경쟁관계를 형성한다. 대부분은 골프 후 저녁 내기 정도지만 가끔은 아주 친한 친구들의 경우에 한해서 돈을 걸고 피터지게 경쟁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평소 감춰져 있던 친구들의 성격이 여실히 들어나게 되고 나 역시 나의 성격을 가감없이 표출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시 말해 얼굴에 한꺼풀 덮혀 있던 가면이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어째던… 오늘은 친구들이 한달에 한번 모여 함께 라운딩을 즐기는 마지막주 토요일이다. 대학동창 넷이 모이니 이놈 저놈 아침부터 걸쭉한 욕설이 오간다. 옆에서 지켜보던 캐디가 한마디 던진다. "친구들 맞아요?" 라운딩 시작 전부터 기선 제압용 욕설이 좀 과했나 보다. ㅎㅎ
친구들과 라운딩하기 전에 언제나 핸디 문제로 설왕설래 한다. "야 임마 너 핸디 좀 내려 이게 어디서 사기치고 그래", "야 너나 사기치지 마" 서로의 핸디 조정이 일단락 나야만 라운딩이 시작된다.
참고로 골프에서 핸디는 규정타수가 72일 경우 자신의 평균타수에서 규정타수를 뺀 수로 결정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 80타 정도 치는 경우 80-72=8 즉 싱글핸디 (핸디가 한자릿수라는 의미)로 아마츄어로서는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 내 경우 90대 초반 약 91타 에서 95타 정도 치니 평균 타수를 92정도 잡고 92-72=20 즉 내 핸디는 20정도 보기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보통 100타 이상 치는 사람들은 무조건 핸디가 28이다. 120개를 친다해서 핸디가 48일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무조건 핸디는 28이다. 마치 당구에서 30 이하는 없듯이… 그리고 한국에서 120타 정도 치면서 골프장 나오면 캐디한테 눈총 엄청 받는다. 한마디로 출입금지다. ㅎㅎ
골프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핸디에 대해 운운한건 친구들과의 내기 시 공정한(이게 공정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게임을 위해 핸디만큼 돈을 미리 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핸디에 대한 조정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다시말해 타당 천원짜리를 친다면 핸디8인 친구가 핸디 20인 나에게 만이천원을 미리 주고 나는 핸디 28인 친구에게 8천원을 주고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자! 욕설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어렵게 핸디조정이 끝나고 줄건 주고 받을건 받고 티 박스에 올라선다. 크던 작던 돈이 걸려있기 때문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다. 사실 그날 경쟁에서 승리해 돈을 딴 친구가 승리 기념으로 거하게 저녁을 쏘기 때문에 그 돈이 그 돈이지만 그래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긴장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하여튼 어깨에 힘이 들어갔으니 초구가 잘 맞을리 만무…. 공이 옆으로 휘면서 수풀(러프 rough) 속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OB('Out of Bounds'의 약자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지역의 경계 밖이라는 의미, 이 경우 1벌타 후 전 위치로 이동 세번째 샷을 친다. 따라서 세컨샷은 4타째가 된다.) 는 아니다. 하지만 세컨샷을 제대로 칠 수 없는 상황이다. 친구들이 비식 웃는다. 매너 없는 놈은 박수까지 친다.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라운딩을 할 경우 이런짓 하면 안된다. 매너 없는 놈으로 낙인 찍혀 골프계에서 퇴출 당할지 모른다. ㅎㅎ)
수풀로 들어가 공을 찾는다. 내 공이 안보인다. 정신없이 찾는다. 공을 찾지 못하면 2벌타. (원래 로스트볼은 1벌타 후 바로 전 위치로 돌아가 다시 치는것이 룰이지만 아마츄어의 경우 골프 진행상 공을 잃어버린 지점에서 2벌타를 먹고 볼을 드롭하여 치게된다.)
자! 이제부터 인간의 본성이 나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 없이 5분이든 10분이든 끝까지 공을 찾는 사람(규정상 5분 이내에 못찾으면 로스트볼로 처리된다), 다른 플레이어에게 민폐 끼치지 않게 빨리 포기하고 벌타 먹고 공을 드롭하여 치는 사람, 슬쩍 다른 공을 놓거나 남이 잃어버린 공을 자기 공이라 우기며 벌타 안먹으려고 사기치는 사람 등등. 그 플레이어의 선택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 공을 찾았다. 벌타는 없다. 하지만 나무 사이로 공을 기가 막히게 치지 않는 한 홀컵을 바로 본다는건 무리다. 이 경우 두가지 유형의 성격이 나온다. 하나는 무조건 홀컵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전진하려고 노력하는 타입, 다른 하나는 전진은 못하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며 공을 페어웨이로 안전하게 Lay Up (가능성있는 어려움을 피하려고 매우 보수적으로 플레이하는 샷) 하는 사람…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취적으로 밀어 붙이는 사람,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안전하게 가는 사람… 남은 생각 안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만 생각하는 사람, 남을 지나치게 신경쓰며 자신의 권리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 심지어 사기치는 사람까지… 골프를 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 인관관계 형성이나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
자! 이제 친구들 모두의 공이 그린에 올라왔다. 타수를 계산한다. "너 몇번에 올라 왔어?" "나 3번", "이 새끼 사기치네 너 임마 저기서 헛방질 한번 했잔아?" "아냐 임마" 하면서 자기 타수를 다시 헤아리는 척 한다. "아! 맞아 그랬다. 그럼 4번" " 아 새끼 지 공이나 잘 치지 그건 언제 또 봤데" ㅎㅎ
골프를 치다보면 흔히들 타수를 줄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물며 큰 액수는 아니지만 돈이 걸렸는데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실수를 가장한 고의성 타수 줄이기는 너무도 쉽게 발각되고 만다. 안보는것 같지만 다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내기 골프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다. 하지만 골프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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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인생이야기를 해 보자. 인생은 인생 그 자체가 경쟁이다. 학창시절 등수가 매겨지는 성적경쟁에서 부터 취업경쟁, 승진경쟁,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사랑경쟁,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자랑 경쟁 등 항상 타인과의 경쟁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경쟁이 없다면 인생도 골프와 마찬가지로 영 흥도 신도 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생은 싫던 좋던 항상 경쟁관계가 존재하게 되며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내기골프처럼 정당하지 않은 수단도 어느정도 가미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그 노력의 방법들을 통해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 또한 인생인 것이다.
흔히들 인생에서의 경쟁이라 하면 거창한 것을 생각하게 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가장 친한 친구들과의 경쟁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게 말해 선의의 경쟁이라 하는데 이놈의 선의의 경쟁에서도 친구를 이겨먹고 싶은 마음에 골프에서 처럼 알까기(공을 두개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위치에 슬쩍 다른 공을 내려 놓는 행위)나 실수를 가장한 고의성 편법 등을 종종 사용하게 된다.
대학시절의 이야기다. 친구 다섯명과 아주 친하게 어울려 다녔다. 함께 공부하고, 술먹고, 당구치며 여학생 꽁무니를 쫓아 다녔다. 경쟁관계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을 것 같은 우정 사이에 언제나 경쟁은 존재했고 이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내기 골프를 통해 경쟁구도를 형성해 가고 있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다. 함께 시험공부 하며 컨닝페이퍼를 공동으로 제작한다. 모든 과목의 컨닝페이퍼를 만들자니 시간이 부족하다 서로 과목에 따라 분야를 나눈다. 분야를 나누고 각자가 만든 컨닝페이퍼를 또다시 서로 베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헤어진다.
시험 당일, "야 너 공부 많이 했냐?" "에이 공부는 무슨 어제 여자친구 만나 술한잔 하느라 공부 하나도 못했어" 마치 골프 핸디를 어떻게든 더 적용 받으려고 엄살을 떨어댄다.
다섯명이 오각형 형태로 자리를 배치한다. 시험을 치룬다. 경쟁이 시작됐다. 컨닝페이퍼를 책상위에 대담하게 꺼내 놓고 베끼는 놈, 소매속에 숨겨놓고 힐끔힐끔 참고하는 놈, 페이퍼 꺼낼 용기가 없어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놈. 마치 골프내기에서 장애물은 고려치 않고 막무가내(무데뽀)로 홀컵만 보고 전진하는 놈, 위기마다 Lay Up하며 안전한 루트를 확보하며 전략적으로 골프를 치는 놈, 장애물을 피하고자 몸만 사리다 언제나 공이 벙커나 장애물에 봉착 하는 놈… 친구들의 성격이 시험때나 골프때나 고대로 반영된다.
시험이 끝났다. 답안지를 맞춰본다. 친구들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너 몇개 틀렸어?" "나? 한 다섯개 틀렸네" "너는?" "나! 나는 한 6개!" "야 근데 니가 만든 컨닝페이퍼 좀 이상해! 정보가 틀렸잔아!" "어! 이것봐라… 너만 맞고 나머지는 너땜에 다 틀렸네…" "아! 그거 시험 전에 알았어 잘못된거라는 걸…" "그럼 알려 줬어야지!" "아! 깜박했다." 정말 깜박한 걸일까? 아니면 깜박하는 실수를 가장한 고의 였을까? ㅎㅎ 속 마음이야 그친구만 알겠지… 하지만 그 일로 그 친구는 소위 개쪽을 당했다.
시험에서 친구들보다 잘 보고자 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다. 아니 인생을 통 털어 남들보다 잘 돼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마음이다. 하지만 골프에서나 인생에서나 자신의 실수 또는 고의적 실수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