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를 치다보니 골프란 운동은 매번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이 연속되는 운동인것 같다. 또한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스스로 져야하는 운동이기에 골프란 운동이 더 매력적이기도 한것 같다.
자! 이제 3번홀 티 박스에 올라섰다. 3번홀은 약 200야드 언저리에 또랑이 있는 500야드짜리 파5 롱홀이다. 첫 티샷, 어떤 클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드라이버를 꺼내 든다. 내 친구 선생이 말 한다. "너 저 헤져드 넘길 수 있어?" 나는 물끄러니 또랑을 바라보며 속으로 웅어린다." 또다시 이어진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구나!."
내 드라이버샷은 아주 잘 맞으면 230야드 정도 보통은 190에서 200야드 언저리 물론 삑사리가 난다면 이런건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하지만 삑사리를 전제로 골프를 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아주 잘 맞아야 또랑을 넘기고 세컨샷을 편하게 준비할 수 있다. 또랑을 못 넘기더라도 조금은 긴 세컨샷을 치면 셈셈이 된다. 더욱이 파5 롱홀이기 때문에 어차피 두번에 그린에 올린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안전하게 5번 아이언 정도 잡고 또랑에 되도록 가깝게 공을 안착 시킨 후 좀 긴 세컨샷으로 또랑을 넘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 상황이 이러한데 드라이버를 잡을 것인가 5번 아이언을 잡을 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
내 선택은 그래도 역시 드라이버… "인생 뭐 있어 무조건 가는거야" 인생에서도 이런 선택을 할것인가에는 내 스스로 의문이 들겠지만 그래도 목숨걸고 치는 골프가 아니고 재미로 치는 골프니 모험을 선택해 본다. 드라이버 샷을 멋지게 날려본다. "어 잘 맞았다. 공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쭈욱 날아간다. 하하 이거 왠일!!! 하지만 공은 여지없이 또랑에 쳐박힌다. 아주 잘맞은게 아니고 그져 잘 맞은 공이다.
여지없이 벌타를 안고 세컨샷 아니 헤져드벌타를 먹었기 때문에 또랑 앞에서 서드샷을 준비한다. 안전한 선택을 했다면 또랑 근처에서 두번째 샷을 했을텐데 무모한 선택의 댓가로 1벌타 후 또랑 도 못 넘긴체 또랑 앞에서 세번째 샷을 하게 된다.
몇번의 헛방질과 삑사리로 5타만에 어렵게 그린에 공이 올라왔다. 운 좋게 그나마 칲샷(그린 주변에서 홀에 가깝게 붙이는 샷)을 잘 쳐서 홀컵 근처에 공이 놓였다. 거리는 약 15피트 내외. 또 다시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다. 홀컵을 향해 한번의 퍼팅으로 공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홀컵 근처에 공을 굴린 후 두번째 퍼팅으로 공을 넣을 것인가? 한번에 넣으려면 공이 홀컵을 지나가야 한다. 많은 아마츄어 골퍼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있다. "버디(Birdie: 규정타 보다 한타 적개 치는 것)가 보기(Bogey: 규정타 보다 한타 많이 치는 것)된다" 즉 욕심 부리다 본전도 못찾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선택도 역시 골퍼 스스로의 선택이다. 나는 한번에 넣는 선택을 했다. 결과는? 하하, 홀컵을 지나 두번은 커녕 세번에 공을 넣어 트리플 보기로 3번홀을 마무리 했다.
자! 이제 3번홀 내 골프 플레이의 선택에 대해 분석해 보자. 첫번째 티샷 1번 드라이버샷의 선택이었다. 1번 드라이버는 골프채 중에 가장 길이가 길고 묵직한 헤드가 달린 채다. 즉 다루기 힘들고 그 만큼 잘 맞을 확률이 떨어지는 채인 것이다. 여기에 내 실력까지 더한다면 드라이버로 또랑을 넘길 확률은 잘 해야 10% 미만. 이에 반해 아이언은 드라이버 보다 길이도 짧고 헤드 각도도 어느정도 있어 드라이버 보다는 훨씬 다루기 쉽다. 내 실력을 감안한다 해도 또랑 근처로 갈 확률은 삑사리를 제외 한다면 못해도 60% 이상…
마지막 퍼팅의 선택, 한번에 넣느냐 홀컵 근처에 붙여 두번에 넣느냐! 경사면이나 내 실력을 고려할 때 한번에 넣을 확률은 높게 잡아 20%, 공을 홀컵에 붙여 두번에 넣을 확률은 70% 이상 하지만 나의 선택은 한번에 넣는것…
나는 모든 선택에서 확률이 낮은 모험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고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는 이번 골프 라운딩이 내기였거나 아니면 승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경기 였다면 나의 선택은 안정된 선택으로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이번 라운딩에서 단지 달콤한 미래를 생각하며 모험을 선택을 했을 뿐이며 그 모험에 대한 댓가는 헤져드 벌타와 몇차례 퍼팅을 더 한 것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인 것이다. 골프나 인생이나 '만약'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이 모두 성공 했다면 나는 트리플보기가 아닌 파로 이번 홀을 마무리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단지 선택에는 언제나 확률이 따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선택할 것이가 아니면 높은 확률에 따라 안정된 선택을 할것인가는 온전히 골퍼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다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골퍼 스스로 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명심할 따름이다.

자! 이제 인생 이야기를 해 보자. 인생도 골프와 마찬가지로 매 순간 순간이 선택과 결정의 연속인것 같다. “점심은 뭘 먹지? 복권을 살까 말까? 오늘은 누구와 한잔 할까?” 등 간단한 선택에서 부터 “전공은 뭘로 할까?, 직장은 어디로?, 결혼은 누구와?”와 같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인생은 항상 끊이지 않는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고 있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히 자기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도 골프와 마찬가지다. 마치 벌타를 먹는것 처럼..
지금부터 나에게 주어졌던 몇가지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나는 컨설팅 회사에 입사 후 신입이라는 딱지를 떼고 어느 정도 역할을 해 나갈 쯤 IMF라는 상황에 부닥쳤다. 컨설팅 회사라는게 제조업처럼 무슨 설비나 고정자산이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가 인원 감축이나 임금의 동결 내지는 삭감일 수 밖에는 없었다. 해서 회사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인원 감축 없는 임금의 삭감이었다. 내가 받던 월급의 30%가 삭감된 것이다. 물론 말로는 정상화 되면 보상한다는 '보상삭감'이었지만 당장 손에 쥐는 액수에 큰 차이가 나니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젊은놈이 벌어논 재산도 없으니 당장 생활에 큰 지장을 겪게 된 것이다.
자! 이제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믿고 회사에 발 붙이고 꾹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조건을 찾아 새 길을 개척할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있던 부서의 부장이 자기와 함께 새 회사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사실 회사는 아니고 인터넷관련 벤처기업들이 모여 만든 정부산하의 사단법인 형태의 조그만 법인이고 그 법인의 대표로 내 부장이 스카웃 되어 나를 끌고 가고자 제안한 것이다. 물론 규모는 지금보다 작지만 발전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정부 산하기관으로 안정적인 면이 나의 결정에 큰 작용을 하는 요소로 부각 되었다..
또 다른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에 있던 부서장이 나에게 자기 부서로 오라는 제안을 한다. 회사가 어렵긴 하지만 어차피 부서별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니 이 위기는 곧 끝날 것이고 바로 정상화 되면 보다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꼬신다. (참고로 이 부서장이 나중에 IMF가 끝나고 그 컨설팅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ㅋㅋ) 이 부서는 당시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갔던 부서이고 부서장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 카리스마를 겸비하고 있어 이 역시 나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선택의 요소에 많은 것이 작용했지만 결국 일과 인간관계의 두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일에 있어 익숙한 업무를 뒤로 하고 업무의 불확실성을 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큰 회사를 등지고 부장과의 의리 하나 때문에 10분의 1도 안되는 규모의 회사, 그것도 이제 막 설립한 회사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일종의 모험 이었다. 마치 3번홀 200야드 언저리에 있는 헤저드를 넘기는 모험을 해야 하나 아니면 성에 차지는 않지만 헤저드 못 미쳐 안전하게 놓일 수 있는 안정적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것 처럼…
골프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헤저드를 넘기는 즉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모험을 선택했다. 부장과의 의리도 의리고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큰 규모의 회사에서 하나의 부속품 처럼 주어진 일만 안정적으로 하는 것 보다는 보다 많은 역할과 권한을 가지고 회사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 내 결정의 주요 원인이었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나? 잠깐 이야기를 돌려 골프와 인생의 몇가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골프는 선택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인생은 선택의 결과가 아주 오래 후에 나타난다. 또한 골프는 헤져드나 위기 상황이 눈에 보이지만 인생의 헤저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해서 인생이 골프보다는 훨씬 어려운 것인가 보다…
어쨋던 당시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십수년이 지난 후에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연히 예전 컨설팅 회사의 동료를 만난 것이다. 그 친구는 나와 똑같은 상황에서 회사에의 잔류를 선택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회사와 함께 IMF를 견딘 후 그 회사의 이사가 되어 있었다. 기사 딸린 차를 제공 받으며 떵떵 거리는 모습이 왠지 나도 그냥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아니다. 다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유추해 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나는 나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과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고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인연들을 소중히 이어 나갔기 때문이다.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이나 댓가 또는 그 반면의 보상 역시 온전히 그 길을 선택한 자신에게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아주 가끔 나는 이런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결정과 선택을 남에게 미루고 그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 애 쓰는 사람들… 하지만 결정을 남에게 미루는 결정 또한 자신이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 결코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도 골프에서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선택은 없다. 단지 그 선택이 무모한 선택인가 안정된 선택인가는 확률과 분석에 따라 자기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보상 또한 자기 스스로 져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를 다시한번 되세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