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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보내는 편지
가족방문학자로 보스톤 지역을 다녀간 고민정 씨 

지금도 먹먹한 그 얼굴, 미아에게

미아, 그간 안녕하셨어요?

제가 그 곳, 윈체스터를 떠나온 지 10달이 다 되고 있네요.

2015년, 딱 1년간 허락된 미국에서의 생활. 남편이 초청장을 받고 방문교수로 오게 된 학교가 마침 Tufts 대학인 바람에 학교도 가깝고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학교 다니기도 좋은 곳을 찾아간 곳이 바로 윈체스터였습니다.

 

저희 가족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봐주신 Peter Yoon 사장님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구하게 된 타운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저희는 꿈같은 윈체스터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반 년 정도는 그저 적응하기에 바빠서 허겁지겁 영어 공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윈체스터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해주시는 친절한 선생님들과 같이 공부한 여러 국적의 이웃들이 너무 그립네요. 특히 책과 DVD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시스템도 너무 감사했고요.

 

그저 인류애로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 주시는 그 분들과 저희 가족을 받아주시고 초대해 주시던 그 곳의 많은 이웃들을 보면서 선진국인 미국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을 뽑으라면 그 따스한 이웃간의 정이라고 하고 싶어요.

오히려 한국인인 미아와는 아이들 운동하는 곳에서 언뜻 얼굴은 뵈었지만 깊은 대화는 나눌 수 없었는데 마침내 가을이 되어서야 기회가 되었지요. 여전히 좌충우돌 부족한 저희 가족에게 미아의 포근한 보살핌과 수많은 정보들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지금도 저희의 미국생활을 풍부하게 이끌어주신 미아께 정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미아와 또 한 분의 한국인 언니와 시작된 오전 산책은 그저 꿈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매일 가을이 깊어가는 혼 폰드나 롱 폰드를 걸으면서 그 소나무 향에 취하고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지요. 그 때 보았던 참나무와 여러 단풍든 나무들, 하얀 줄기의 앙상해진 자작나무, 호수 위를 노닐던 청둥오리와 백조들, 아름드리 나무를 넘나들던 새까만 눈의 칩멍크, 찬 겨울이 시작되며 보았던 카디날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거울같은 호수 위에 그대로 비치던 반영들과 마주치면 어김없이 다정한 인사를 건네던 여러 민족의 얼굴들, 반려견들과 함께 여유롭게 산책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아득히 그립기만 합니다.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드는 산책 후에 들렀던 베이글 가게에서 마시던 커피랑 베이글은 또 얼마나 맛있었게요. 미아가 사주신 도너츠 가게에서 먹었던 브런치도 절대 잊을 수 없구요. 그러던 가을의 절정은 역시 할로윈 데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한산했던 타운마당에 가득했던 갖가지 의상을 차려 입은 윈체스터 시민들의 모습은 가히 문화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어요.

 

생전 처음 겪어보는 행사에 우리 아이들도 직접 고른 의상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서 용기내어 퍼레이드도 해봤습니다. 풍선을 달아놓은 상점마다 다니면서 받았던 사탕과 초콜릿은 정말 저희 삭막한 한국인들의 마음을 달달하게 녹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거리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던 찬란한 단풍 속의 집구경도 진짜 황홀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이 납니다. 전 그 때 미국사람들은 때마다 장식을 하기 위해서 집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정말 관이 열리고 해골이 튀어나오는 장치까지 해 놓은 귀신의 집 모형을 일반 시민들이 자비로 설치해 놓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지금도 완전히 이해되진 않습니다. 

 

할로윈 데이 저녁에 저희 아이들이 어색하고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하셔서 미아의 손자, 손녀와 함께 “Trick or treat!”를 다닐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것 지금도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윈체스터 주민들의 전통도 느끼고 집안구경도 살짝 하고, 사탕, 초콜릿, 앙증맞은 선물도 넘치도록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그럴 수 없음에 우리 집 아이들이 지금도 안타까워하고 있네요.

 

이제 곧 가을이 다 지나가며 켜켜이 낙엽을 떨어뜨리겠지요? 그럼 정말 길기도한 겨울이 시작될 테고요. 아파트에 살던 저희 가족은 그렇게 많은 눈을 보는 게 그저 신기하고 황홀해서 즐기기에 바빴지만 그 곳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잖아요. 올해는 그 곳에 계시는 미아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힘들지 않은 날들을 보낼 수 있는 겨울날씨가 되길 빕니다.

 

저의 어머니 연배이시면서도 활기찬 빠른 걸음으로 걸으시며 당신의 경륜을 다 나누어주신 미아가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길 두손모아 기도드릴 뿐이에요.

저희가 9년 후에 다시 그 곳으로 갈 기회를 모색하고 있거든요. 그 때 다시 만나서 또 같이 산책하고 대화하고 맛난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고 미아의 가족 모두 평안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말 그립습니다. 윈체스터와 여러분들이…

 

2016년 가을, 서울에서 고민정 드림.  

Boston Life Stor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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