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복의 영시(英詩) 산책

장용복 선생님은 지난 4년간 뉴잉글랜드 한인회보에 <오페라 산책>, <서양 명화 산책>, <서양 고전 문학 산책>, <한국 서예 산책> 등을 기고하여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제공해 왔습니다. 작년(2016년) 말에는 심장마비로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완쾌되기도 전에 집필하신 <장용복의 영시 산책>을 보스턴라이프스토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10회: 파운드 (Ezra Pound 1885-1972)

지금은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와서, 미국이 예술이나 과학의 중심이 되었지만,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문예인들이 많이 유럽으로 갔다. 이들을 엑스페이트리엇(expatriate 약해서 expat)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주인공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도 헤밍웨이나 슈타인(Gertrude Stein)같이 유럽에서 활동하였다. 23세에 단신으로 $80을 손에 쥐고 미국을 떠났던 것이다. 7, 8십대 독자 중에 많은 분들도 $100 정도의 돈을 들고 미국에 오셨을 것이다.
파운드는 귀거리를 하고, 멕시코의 밀짚모자를 쓰고, 당구대에 까는 초록색 천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대낮에 런던을 걸어다녔던 부끄럼이 없는 괴짜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열정가로 영국과 미국의 문학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평론가가 되었다. 작가들의 원고를 출판 전에 교정하는데는 누구도 따르지 못했다. 엘리엇( T.S. Eliot)의 대표작인 <황무지> (The Waste Land) 를 교정하였고 예이츠(Yeats)의 작품에도 손을 댔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벌써 시인이 되려고 결심하였다. 영국에 가서는 시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이미지즘(imagism) 운동에 기여를 많이했다.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몇년 후에 탈당하기는 하였으나 이미지즘의 영향은 대단했다. 시를 쓸 때 낭만주의에서 벗어나고 感傷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훌륭한 산문으로 쓰여진 자료를 신통치 않은 시로 만들지 말고, 불필요한 단어나 도움이 안되는 형용사를 쓰지 말라고 주장했다.
얼마나 단어들을 경제적으로 썼는지 그의 짧은 자유시(free verse) <소녀> (A Girl) 를 통해 알아보자. 희랍 신화를 연상하게 한다. 아폴로(Apollo)는 태양의 신이고 대프니(Daphne)는 요정이다. 아폴로로부터 모욕적 언사를 들은 큐피드(Cupid)는 화살을 아폴로의 가슴에 명중시켜 대프니를 사랑하게 만든다. 대프니에게도 화살을 날려 아폴로를 싫어하게 한다. 대프니는 도망가다가 아폴로에게 붙잡히자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버지는 그녀를 나무로 변하게 한다.
시를 읽어보자. 첫 聯의 話者는 대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 몸이 변하는구나. 피부는 나무 껍질로, 팔은 나뭇가지로, 손은 잎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몸은 나무 기둥으로, 그리고 뿌리로 변하는구나. 두째 연은 아폴로를 화자로 보면 되겠다. 어리석은 여인이여. 키는 컸어도 아직 어린 소녀로구나. 행복을 모두 차 버리고 變身 (metamorphosis)을 하다니. 어리석은 아이로다.
독자들은 어느 시에서나 시인의 본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시인 자신이 애매모호하게 쓰기도하고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도 쓴다. 또 독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게 해석하려고도 한다. 이 시에서도 희랍 신화와는 달리 현대적 해석을 할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나무가 되고싶어 한다든지 동화에 나오는 공주가 되고싶어 한다든지 할 때 어른들은 이를 우습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좀더 나아가서 지나칠 정도의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기존 세대가 받아드리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심경을 표현하였다고도 할 수있다.
현재 韓流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듯이, 19세기 중반에는 일본 문화가 유럽에 들어가서 자포니즘(Japonism)을 만들었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가 전시되면서 시작하였다.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즉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인데 당대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이다. 명암이 적고 평면적이며 색이 강렬하다. 이런 작품들이 당시 유행했던 인상주의 화가와 작곡가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
문학에서는 하이쿠(俳句)라는 시가 영향을 주었다. '광대의 글귀' 라는 뜻인데 일본의 정형시의 일종이다. 한국의 시조와 같이 세 行으로 되어 있는데 매우 짧다. 그러나 강렬하고 여운은 깊고 길다. 첫 행은 5음절, 두째 행은 7음절, 세째 행은 5음절로, 모두 17음절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모란꽃 져서
고요히 겹쳐지네
꽃잎 두 세장
牡丹散りて
打ちかさなりぬ
にさんべん
20세기 이후 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서양의 문학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하이쿠의 간결함과 문학적 깔끔함에 충격을 받았으며, 파운드를 위시한 이미지즘 시인들의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파운드는 "옛날 중국의 어느 시인은 말해야 할 것을 열두 행으로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하이쿠는 그것보다 더 짧게 말한다." 라고 감탄했다.
파운드가 하이쿠의 영향을 받고 쓴 두 행으로 된 <메트로 정거장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를 읽어보자. 파리의 메트로 지하철 정거장에서 느낀 詩想을 처음에 30행으로 썼다. 만족스럽지 못해서 찢어 버렸다. 반년 후에 짧게 써 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버렸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하이쿠를 생각하며 두행으로 줄이게 되었다. 1912년에 발표가 되어 현대의 시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준 유명한 시가 되었다는데 시인의 심중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정거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금새 나타났다 금새 사라지는 그들의 얼굴은 마치 유령을 보는듯 하다. 이러한 幻影은 젖어있는 검은 나뭇가지에 피어있는 꽃잎들 같다는 것이다. 검은 나뭇가지라고 했으니까 야경일 수도 있고 검은 아스팔트 포장 길일 수도 있다. 길 위의 사람들의 얼굴은 가로등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꽃잎들 같다는 것일까? 일본의 화려하게 피어난 수 많은 벗꽃을 연상했을까?
첫 행을 두째 행에 비교한 隱喩(metaphor)이고 black bough 라는 頭韻을 써서 어두운 배경을 강조하였다. 첫 행의 apparition 은 유령이라는 뜻도 있지만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뜻하기도 해서 두 뜻을 다 써도 될 것 같다. 시의 제목도 많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의 제1행으로 보면 되겠다.
파운드는 동료들의 작품이 출판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들이 힘들 때 구원의 손을 뻗혔다. 조이스(James Joyce)의 대표적 작품들이 햇빛을 보게 만들었고 빈궁할 때 돈은 물론 헌 구두도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활동적이라 여성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는지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부인과 한 침대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늦바람이 나서 미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와 아이까지 만들었다.
영국에서 살다가 이태리로 무대를 옮겼다. 국제 경제에 관심을 쏟았다. 독재자 뭇솔리니를 지지하게 되었고 미국을 비난하게 되었다. 미국의 은행계를 좌지우지하는 유태인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붙잡혀 미국에 끌려와 반역죄로 재판을 받았다. 정신이상자로 판단이 되어 와싱턴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13년을 이 병원에서 지냈는데 지난주에 소개한 시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적극적인 운동으로 풀려 나왔다. 이태리로 돌아가서 14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계속)
<소녀> (A Girl)
나무가 내 손으로 들어갔다.
수액(樹液)이 내 팔로 들어갔다.
나무가 내 젓가슴 속에 자란다 -
아래 쪽으로.
나뭇가지가 나로부터 뻗친다, 팔처럼
The tree has entered my hands,
The sap has ascended my arms,
The tree has grown in my breast --
Downward,
The branches grow out of me, like arms.
너는 나무,
너는 이끼,
너는 바람이 머리 위로 부는 오랑캐 꽃.
한 어린애 -- 아주 키 큰 -- 너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세상에겐 어리석게 보이리.
Tree you are,
Moss you are,
You are violets with wind above them.
A child -- so high -- you are,
And all this is folly to the world.
(이재호 역)
<메트로 정거장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군중 속의 이 얼굴들의 유령;
젖은 검은 나뭇가지에 핀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Boston Life Stor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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