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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엄마의 이야기

엔지 엄마의 좌충우돌  가~드닝

​최정우

좌충우돌 가~드닝! 8

채송화 이야기

 

 

지지부진 구구절절 늘어놓는 산문에 정을 쏟는 나는 시를 잘 모른다. 그런 내가 소유한 10권이 채 되지 않는 시집들 중 3권이 최승자 시인의 것이다. 대학 졸업 무렵 어쩌다 잘못 들어선 서가에서 꺼내든 시집에 그만 발목이 잡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사들고 온 것이었다. 뭔가를 향해 돌진해 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가, 갑작스레 기운이 빠져 우두망찰 서 있는 내 정수리에 그녀의 시가 시퍼런 찬물을 끼얹었다고나 할까.

 

외롭지 않기 위하여/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 소리만이/빈 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최승자)

 

이토록 강렬하게 삶과 죽음을 오가며 분투하던 그녀가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나는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알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소식은 대개가 2010년에서 2011년이 마지막인 걸 보니 그 후로는 작품 활동을 거의 중단한 듯하다.

뜬소문처럼 전해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인터넷을 뒤져본 건 뒤뜰에 심은 채송화 때문이었다. 한여름 땡볕에 질세라 와르르 다채로운 빛깔의 꽃잎을 펼쳐보이던 그 꽃들을 보기가 의외로 만만치 않다는 걸 올해 처음 알았다.

채송화 꽃은 햇빛이 가장 강렬한 시간 동안 피었다가 해가 이울 기미가 보이기무섭게 꽃잎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올해처럼 흐린 날이 많은 여름엔 채송화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알수없어서, 분꽃도 어여쁘고 도라지꽃도 만발했건만,  내 눈길은 끝내 채송화 곁을 맴돌고만 있다. 아흔 아홉개의 보석을 가지고도 마지막 남은 한개의 보석 때문에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는 어리석은 페르시아 여인의 마음을 알것도 같다.

얘기인즉슨 이러하다.

옛날, 보석을 좋아하는 페르시아의 여왕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운 보석이 가득 담긴 자루를 들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보석 하나를 얻기 위해선 사람의 목숨 하나를 내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보석에 넋이 나간 여왕은 신하들의 목숨을 내놓는 댓가로 보석을 갖게 되지만,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남겨두고는 더 이상 바꿀 목숨이 없게 되었다. 결국 여왕은 마지막 보석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여왕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녀가 얻은 모든 보석들이 꽃으로 피어났다. 그리고 그 꽃이 (이미 예상했겠지만) 바로 채송화란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우화같은 이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들리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 모두 생에 한번쯤은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을 위해, 시를 위해, 거룩한 이념을 위해…. 내주고 또 내주고, 마침내 나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주리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셈빠르고 영악한 나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줄 알았기에 적당한 지점에서 뒷걸음질을 쳐 이렇게 안온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끝내 포기할 줄 몰랐던 한 시인의 고단한 삶 앞에서, 오늘 나는 옷깃을 여민다.

꽃잎을 다문 채송화

만개한 분꽃과 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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