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terview

다문화 선교 교회 김동섭(Sam Kim, 50)목사를 만나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나는 그 사랑을 섬길 뿐이다.

보스턴라이프스토리는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목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문화 선교 교회” 김동섭 목사의 평범치 않은 인생 이야기를 듣기위해 보스턴 북쪽에 위치한 “다문화 선교 교회”를 찾아갔다.  이날의 만남은 김동섭 목사의 요구도 보스턴라이프스토리의 요청도 아니었다 . 김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의 신도들이 목사님이 너무 좋아서, 우리 목사님을 너무도 자랑하고 싶어서 목사님도 모르게 자리를 마련하고 기습적으로 목사님을 초대해 이루어진 자리였슴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김목사와의 만남은 목사님의 근엄한 위엄과 정제된 말씀을 늘 머릿속에 심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데서 부터 시작되었다.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히 풍겨져 나오는 그의 첫 인상은 친근함과 겸손 그 자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꾸준히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평범 이상의 특별함이 엿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시절, 변호사의 길…

 

그는 1976년 그의 나이 아홉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처음 도착했다. 누구나 마찬가지 였겠지만 그 역시 어린나이에 미국에 와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년배 미국 불량 학생들 무리가 행하는 무시와 따돌림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신앙이 자라났다고 웃음 짓는다.

 

그가 간직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특별했고 그 추억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자신의 삶을 인도해 나간다고 말 한다.  그가 말하는 아홉살 소년의 특별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홉살 소년은 예배를 보고 있었다.  예배 중 누군가가 양과 염소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복음 25장을 읽어 나가는 순간  갑자기 주위의 모든것이 사라지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고 한다. "누가 나를 위해 낮은 곳에 갈것이냐" 이 물음에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때 부터 그는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불편한 사람, 다시말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낮은곳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기위해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홉살 소년이 고민하기에는 평범치 않은 문제였고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지만 나름 어른들의 도움으로 그 길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찾게 되었고 그 길이 바로 변호사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때 부터 그는 법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법대 진학 후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그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들의 펀드같은 곳에서 인턴쉽을 하며 집없는 가족들을 위해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봉사단체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그들을 도우면 도울수록 그는 무언가 한쪽이 비어 있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것도 의미있는 일일 수 있으나 그들이 왜 이 상황에 처하게 된것인지가 더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은 알아 주시지만 제시해 주시는 길이 항상 나와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이런 생각으로 그는 가난한자들을 맹목적으로 돕는 변호사가 되기 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업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다.  사업의 성장을 통해 낮은곳에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일하며 얻은 댓가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선순환적 구조를 만들고 싶었고 그 일을 성공시키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변호사로서의 성공과 또 다른 길로의 인도

 

사업변호사로 변신한 그는 승승장구 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업들을 성공시키며 그 사업을 통해 낮은곳의 사람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 자신을 버리고 나의 고객을 위해 섬기라”는 변호사의 직업적 윤리가치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성공 보다는 고객의 성공, 고객의 목적달성을 위해 열심히 섬기는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길이라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변호사 일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사업들을 성공시키면서 파트너 변호사라는 타이틀도 얻고 여기저기 강연도 나가면서 매스컴에 소개도 되는 성공적인 변호사 생활을 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변호사의 일 뿐 아니라 그가 원래 추구했던 낮은곳을 바로보는 사회적 관계의 끈은 놓지 않았다. 로펌 변호사의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꿈과 희망을 전파하기 위해 어렵게 사는 작은 마을들을 돌며 길거리 전도를 계속했고 엠마뉴엘 가스펠선교센터의 문을 두드려 그곳에서 약한자들을 위해 함께 일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님이 또 다른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하기 위해 준비시키는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변호사로서의 일과 낮은 곳의 사회에 대한 섬김을 함께 이어가던 중 2009년 급속한 경기침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졌고 직장을 잃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변호사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찾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길을 찾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왜 변호사로 불림을 받았나?" 하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된 이유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함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주저없이  "이제 때가 되었으니 떠나라"라고 말씀 하셨고 그 말씀에 따라 아무 미련도 후회도 망설임도 없이 로펌을 그만두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새 길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신학도로서의 새로운 길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때 하나님은 어디로 어떻게 떠나라는 말씀은 없으셨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좀 더 높은곳에서 낮은곳을 바라보며 섬기라는 방향만을 제시해 주셨다고 한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평범한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 그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생의 목표도 방향도 없이 잘나가던 변호사를 순간적으로 그만둔다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그의 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가 주어지면 다음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 내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한 길을, 그의 뜻을 자신은 묵묵히 따라가며 섬기면 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물론 이러한 결정을 혼자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제는 한몸이 된 나의 배우자와 오랜시간 함께 이야기 하고 기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와이프가 반대하는 일이라면 그 역시 하나님이 허락한 길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전 와이프가 내게 내건 조건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락밴드 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조건을 약속하고 결혼 했기에 나는 와이프가 나의 길을 선뜻 허락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나 또한 목사라는 길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어렴풋이 하나님의 뜻이 목사가 되어 낮은곳을 섬기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많은 핑계를 대며 거부했던 일이 생각난다고 한다.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제 역량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 첫번째 거부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변호사시절 내가 사업을 도왔던 한 고객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가 미국교회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 교회 목사님이 마침 동역자를 찾기위해 기도하던 중이라며 반가히 맞아 주신다. 그곳에서 나는 목사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가게 된다.

 

"하나님 저는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닌것 같습니다." 두번째 몸부림이었다. 하나님은 그것도 해결해 주신다.  변호사시절 가난한자들을 위한 펀드 모임에서 함께 일했던 변호사  한분이 신학대학 학장의 친구였다며 나를 추천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결혼 전 목사라는 직업을 반대했던 나의 와이프 역시 아무 걱정 말고 신학대학에 가란다.  내 핑계가 하나도 먹히질 않는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세번째 핑계를 대 보았다. 역시 소용없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변호사로서의 내 재능을 활용하여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장학금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목사의 길을 거부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든 어려움을 다 풀어주시고 내 갈길을 인도해 주신다. 결국 자신은 이때부터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 한다.

목사의 길 그리고 다문화선교 교회와의 만남

 

신학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는 목회활동을 할 교회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알아보고 있던 때라고 했다.  뉴욕의 큰 교회도 있었고 중국인들이 모인 규모가 큰 교회에서 자신을 불러주어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던 한인 2세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국제결혼 하신 분들이 모여 목회를 하는 작은 교회를 알게 되었고 그때는 "아 그런 교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쳤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작은 마을의 그 작은 교회가 자신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떠나질 않았다고 말한다.  마치 9살에 하나님이 불러주실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기분! 낮은곳으로 누가 갈것이냐? 그 질문이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렸다고 한다.

약한자들, 힘든자들 그들이 누구일까? 어려운 시절 국제결혼을 통해 미국사회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사회도 아닌 양쪽에 끼어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 경제적 여유나 풍요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다면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해 준 길이 아닐까?

 

이렇게 연을 맺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도해 준 교회가 바로 "다문화선교 교회"요. 하나님이 첫 목사로서 나를 인도해 준 교회가 바로 다문화 선교교회라고 그는 말한다.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

 

김동섭 목사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 다문화선교 교회의 신도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목사님에 대한 칭찬과 감사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 목사님은요 더 크고 대우도 좋은 교회도 다 마다하시고 우리를 위해 와 주셨어요.” , “우리 목사님은요 설교를 얼마나 잘하시는 지 아세요? 그리고 매주 설교를 위해 준비도 엄청 많이 하세요.”, “우리 목사님은요 노래도 엄청 잘하세요. 기타와 하모니카 하나로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시는데요…” 그들의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 신도들의 수다 속에는 목사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목사님은요 좋고 화려한 꽃길을 마다하시고 우리에게 와 주셨어요. 너무 감사해요” 라는 한 신도의 말에 김동섭 목사는 조용히 대답한다.

“지금 제가 가는 이 길이 바로 꽃길입니다.”

bostonlifestory.com (글 박진영)

Boston Life Story

보스턴 라이프 스토리는 보스턴 한인들의 소소한 삶을 정감있게 표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보스턴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사이트 입니다.

보스턴 라이프 스토리는 보스턴 한인들의 소소한 삶을 정감있게 표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보스턴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사이트 입니다.

  • Facebook Black Round
  • 20170320_141628

전화. 617-750-0207  |  오피스. bostonlifestory@gmail.com  |  기사. bostonlifestory.artic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