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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르몽의 싯귀에 나는 대답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치우느라 내 허리 휘는 소리가…”

보스턴에 짙게 물들었던 가을 단풍이 서서히 지고 있다.  보스턴의 가을 정취를 한껏 선사했던 형형색색의 가을 단풍이 하나 둘 지면서 그 자리엔 여지없이 낙엽이라는 잔재가 흩어져 내리고 있다.  역시 자연의 선물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조용한 숲속 오솔길에 쌓인 낙엽은 늦가을 마지막 정취의 표상처럼 느껴지는데 내 집 앞마당에 쌓인 낙엽은 나에게 더 이상 가을의 정취만은 아니게 느껴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일요일 늦은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진 탓일까? 아니면 평소 생활 습성을 벗어나지 못해서 일까? 침대 속에서 눈만 깜박거리며 이불을 박차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 그 때쯤 여지없이 그분의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여보 얼른 일어나 마당 낙엽좀 치워요…." 어느 분의 명 인데 거역하랴….

부스스 몸을 추스리고 간단한 작업복 차림으로 차고로 향한다. 참고로 보스턴을 포함해 미국에 사는 남자들에게 차고는 차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자들의 보물 창고라고나 할까? 집안을 손질하기 위한 각종 장비나 도구가 쌓여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떠도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집안 서열을 따져 볼 때 남자는 와이프, 자식들, 애완견 다음으로 그 서열이 가장 낮다고 한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남자들에게 차고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온전한 안식처이자 작업장을 제공해 주니 그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겠는가?

어쨋던 차고로 향한 나는 블로워(Blower : 바람을 이용해 낙엽을 치우는 기계)를 꺼내 들고 낙엽이 소복히 쌓인 마당으로 향한다. 강한 바람을 뿜어내기 위해 내는 요란한 모터 소리에 마지막 남은 어설픈 선 잠의 여운이 말끔히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잔뜩 호기롭게 블로워로 낙엽을 치워 보는데 이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남들이 하는걸 보면 시원하게 낙엽이 바람에 날려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이거 내가 하면 낙엽들이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춤만 추지 좀처럼 한곳에 모이질 않는다. 블로워 바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건지 아니면  앞마당 낙엽들이 깊어가는 가을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발악을 하는 건지 도통 말끔히 치워지질 않는다.

결국 나는 블로워의 스위치를 끄고 갈쿠리를 집어 든다.  평소 운동량이 적은 나에게 가을 공기 마시며 운동 좀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낙엽을 긁어 모으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낙엽들을 모두 한곳에 모으고 나니 등쪽 한켠에서 땀방울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일요일 아침운동으로 괜찮치 않나 생각할 때 쯤 다시금 그분의 음성이 들려온다. "여보~~ 커피 한잔 하고 해요…." 이거 수고했다거나 그만 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일단 커피한잔 하라 하니 뭔가 찜짐함을 뒤로 하고 아내가 내려준 따끈한 커피를 목젖에 축여 본다.

말끔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낙엽이 치워진 정원을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가올 추수감사절에는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딸 아이가 오니 반찬이며 음식이며 준비할것이 많단다. 또 내년 의료보험비가 많이 인상 된다는데 어떤 보험을 선택해야 할지 연구 좀 해 보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환절기에 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니 안부 전화 한번 넣자고 한다.  향 짙은 커피를 앞에 놓고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와이프와 함께 잠시나마 일요일 늦은 오전의 여유를 부려 본다.

따끈했던 커피가 식어가고 커피를 담았던 컵의 바닥이 보일때 쯤 와이프와의 대화를 대충 정리하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로 갈까? 아니면 인터넷 연결해 세상 소식이나 들어 볼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 내 등 뒤로 비수와 같은 그분의 한마디가 날아 온다.

"여보… 화단에는 아직 낙엽이 많이 쌓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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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보스턴의 삶이다.  서울처럼 요란스럽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요하고 평온함 속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보스턴의 삶이다.  분주함이나 서두름이 없는 평온한 삶이지만 그 속에서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는 것 또한 보스턴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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