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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어느 드러머(Drummer)의 편지 

Musician & Drummer 최광웅 (버클리 음대)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기회 입니다...

   직업으로서의 뮤지션, 그 중에서도 드러머는 K-POP의 열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꿈꾸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아직 생소합니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 훌륭한 악기인 이 드럼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5년을 드럼연주에 매진해온 저로서는 참 재미있는 일 입니다.

 

   평생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회의 인정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참 축복받은 삶이지만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 음악을 전공하려고 마음먹은 학생들이나 그 부모님들에게는 불안한 요소가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현재 전공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어떤 일들도 다 그러하듯 뮤지션, 드러머의 길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따라 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이 일을 좋아한다면 그 성취감 또한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만큼 크기때문에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드러머로서 잡은 첫 기회는 뮤지컬 맘마미아 밴드였습니다.

 

   처음 드럼연주를 전공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때 저희 집안형편은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음악공부에 필요한 학비를 벌기위해 신문배달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등을 해야했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면서 대입 입시도 두번이나 실패하는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삼수를 통해 입학한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만난 전공 교수님이셨던 오종대교수님은 이후 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한 해동안 제가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보셨던 교수님은 저를 한국 초연 뮤지컬이었던 맘마미아의 음악감독님께 소개하셨고 다행히 그 음악감독님께서 저의 연주를 마음에 들어하셔서 4개월 반 동안의 뮤지컬 맘마미아 밴드의 드러머로 발탁해주셨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좋은 경험과 수많은 음악적 선배들을 만났고 그 만남들은 이후에 제가 다른 가수의 공연이나 크고 작은 행사들에 섭외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때가 제가 스물 셋이었습니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공연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예전에 문선단이라고 불렸던 해군홍보단의 오디션이 있었습니다. 군입대를 앞두고있던 저에게 수많은 연예인들과 좋은 연주자들을 배출한 해군홍보단의 오디션은 큰 기회였습니다. 일년동안 오직 한명만을 선발하는 오디션에서 다행히 합격하여 저는 해군홍보단의 드러머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2년 2개월동안 수많은 공연과 연습을 통해서 경쟁력을 더 갖추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군홍보단 출신이라는 점은 군 전역 이후에 다른 공연에 섭외될때 순효과로 작용하여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군 전역 후, 대학교에 복학하여 졸업한 후 다시 뮤지컬 맘마미아 밴드로 6개월동안 공연하게되었는데 그때 같이 연주하던 선배님들에게서 이승환밴드의 오디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속 밴드를 운영하는 몇 안되는 팀 중 하나인 이승환밴드는 저에게 있어서 여태까지의 어떤 것 보다도 더 큰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저는 이승환밴드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이후 드림팩토리 전속 드러머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승환밴드 드러머로서의 삶은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물일곱의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매달 충분한 생활비를 드릴 수 있었고, 수많은 방송출연과 대규모의 공연들을 통해 소중한 경험들과 음악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드럼을 처음 접했던 십대 때부터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이루지 못할 꿈일 줄만 알았던 미국으로의 유학을 빠듯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력으로 가능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뮤지션의 길은 아직도 사회 주류의 길은 아닙니다.  또래의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과 다른 것을 공부해야 하고, 때로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열정을 쏟고 있는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확실하다면 이 길은 우리에게 큰 행복을 선물해줍니다.

 

   제가 처음 드럼을 전공하겠다고 주변 분들께 이야기했을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그 자체로 내버려둬라. 그래야 불행해지지 않는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도 제가 주목했던 것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였습니다. 저는 다만 불행해지지 않고 싶지 않았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불행해지지 않는 것은 안정, 행복해지는 것은 도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도전했고 분명 힘든 시기가 많이 있었지만 도전할 수 있었기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버클리 음대로의 유학을 오기위해 4년동안 몸 담았던 이승환밴드를 그만두었을 때는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유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왠지모를 불안감과 적지 않은 나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새로운 도전이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던 중, 출국 전에 승환형님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4년간 성실하게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멋지게 성장해서 와라".

 

도전하는 사람은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아름답게 합니다.  그것이 제가 뮤지션, 드러머가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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