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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엄마의 이야기

엔지 엄마의 좌충우돌  가~드닝

​최정우

이맘때면 늘 뒷마당 응달진 곳에서 꽃을 피우는 매발톱 꽃의 꽃말을 찾아보니 어디엔 ‘승리의 맹세, 용기’라고 나와 있고 또다른 어디엔 ‘우둔’이라고 나와 있다. 용기와 우둔이라니, 묘하지 않은가. 승리의 맹세, 그 결기 가득한 용기 안엔 분명 일말의 우둔함이 섞여 있으리라. 어느 정도의 우둔함이 없다면 우리는 옴짝달싹 못한 채 제자리만 지키고 있게 되리라. 최적의 토양과 최고의 기후 조건만을 기다리느라 끝내 뿌리 내리지 못한 씨앗은 과연 씨앗일까.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에겐 정확히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 각각은 불가능한 동시에 필연적인 존재이다.’ (Hope Jaren의  ‘Lab Girl’ 중에서)

 

 

 

(왼쪽은 지인이 꽃피운 호박씨, 오른쪽은 종소리 매발톱꽃)

‘그 어떤 모험도 씨앗이 첫번째 뿌리를 내리는 일보다 더 아슬아슬한 모험은 없다…. 첫번째 뿌리를 내리는 순간, 씨앗은 이제 더 따뜻하고 더 물이 많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한다.’

    Hope Jaren이 쓴 ‘Lab Girl’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내맘대로 번역이니 혹시 한국어 번역본에서 위의 구절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하지 마시길). 지난 2월, 날이 좋아 싹을 틔웠던 호박이 전부 죽고 말았다. 너무 일찍 내다 심었기 때문이다. 메모리얼 데이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 올해는,  하는 헛된 바람을 떨칠 수가 없어서 일을 저질렀다가 엄한 씨앗들만 저세상으로 보낸 셈이다. 그렇게 내 작은 화분 안에서 뿌리를 내렸던 씨앗들의 모험은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물론 그 실패는 씨앗의 실패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실패였다. 그 때 싹을 틔운 씨앗을 아는 분께 선물했는데 그 분은 그 어린 싹을 어찌나 정성껏 돌보았는지 벌써 꽃을 피웠다.

그저 부지런하면 돼, 라고만 생각하며 텃밭 농사에 달려든 나는 종종 이렇게 스스로의 조바심에 발목이 잡히는 일이 있다. 이사온 첫해엔 너무 일찍 가지치기를 하는 바람에 뒤늦게 닥쳐온 눈보라에 장미와 해당화 나무들을 많이 상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문제는 조바심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 조바심만 믿고 덜컥 뿌리를 내린 씨앗들에겐 차마 못할 말이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저지르고 만다.

끝내지 못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까맣게 잊고 말 꿈을 꾼다. 그리고 좌절한다. 그래, 난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어, 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숨죽인 채 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최선인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런 날이면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토리 나무가 수백개, 수천개, 아니 수만개의 열매를 맺는 까닭은 그 중에서 극히 적은 소수만이 싹틔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 속엔 이미 수많은 실패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압도적인 실패의 가능성에 굴복되지 않는 것, 지극히 미약한 가능성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실패를 감수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이며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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