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격심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생활을 지낸 81학번들은 어느새 50을 훌쩍 넘어 초로의 나이를 맞이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인 것이지만 다른 학번에 비해 유난히도 많은 변화를 겪었던 그들은 아직까지도 극소수의 엘리트만 다녔다는 자부심과 장유유서의 확고한 신념에 대학생활을 만끽한 70대학번과 신세대 문화와 다양한 개성이 분출됐던 90년대 학번들의 끼인 세대로 자리잡으며 오늘날을 살고 있다.  특권의식보다는 대중의식으로 시작된 젊음 그러나 선배에 대해 깍듯함을 잃지않고 무조건적 복종을 덕으로 알았던 세대,  그러한 상하관계를 소위 신세대라 불리는 후배들에게는 강요할 수 없었던 서글픈 세대, 그런 시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80년대 학번의 선두주자 81학번들의 추억을 조명해 보았다. 

 80년대 학번의 대학생활은 훌라송으로 시작해 훌라송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소위 상아탑은 진리나,학문탐구니 하는 거창한 문구보다는 시위에 더 매몰돼 있던 시절이었다.여행, 술자리, 미팅장,당구장에서조차 데모 이야기가 빠지면 프락치로 오해받기 일쑤였다.  전두환정권 7년과 궤를 같이한 80년대 대학생활은 정국처럼 혼란과 굴곡의 연속이었다.입학식 이후 시작된 정권퇴진 운동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뒤에도 계속됐으니 말이다.

 

 81학번은 소위 이규호장관의 졸업정원제(졸정제)가 시작된 해 첫 입학생들이다.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이규호는 ‘대학은 쉽게 들어가되 졸업은 어렵게 하자’는 취지로 신입생들의 숫자를 대폭 늘렸다.  대학에 들어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국가경쟁력이 있다는 그럴듯한 논리였다.  일본 도쿄대 입시문제까지 풀어야 했던 본고사제도를 없애고,예비고사 성적만으로 대학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예비고사에 이어 본고사에 찌들린 고3 학생들, 특히 중하위권의 학생들에게 졸정제는 희소식이었다. 우선 입학정원이 크게 늘어난 데다 몇개의 대학에 원서를 동시에 넣어 합격한 대학을 선택해 갈 수 있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81년 처음 도입된 졸정제는 첫 시행부터 이변의 연속이었다.

 

   서울대와 연고대 등 상위권 대학에 눈치작전이 성행하면서 미달학과가 속출했다.  복수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원서를 넣은 학생들이 합격이 유력한 대학으로 하향지원 하면서 명문대학은 상대적으로 미달된 학과가 많아졌다.  그런 바람에 340점 만점의 예비고사에서 150점대를 기록한 수험생이 서울대 미달학과에 합격하는 촌극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런 학생이 연일 신문지상에 화제로 보도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어쨋던 극렬한 눈치작전과 우여곡절속에 입학한 대학 새내기 81학번들의 입학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81년 봄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휴교령이 내려진 탓인지 81년의 학교는 잠깐이나마 개학부터 생기가 나돌았다.  신입생이었던 우리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대학생활의 자유를 만끽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술잔도 기울이고, 미팅과 축제로 연애에도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낭만과 자유는 우리를 오래 잡아두지 않았다.  개학이 얼마되지 않아 전두환정권에 저항하는 시위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쏘아올린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학기 내내 교정을 뒤덮었고,소위 백골단들은 툭하면 학교까지 쳐들어와 학생들을 연행해가곤 했다.  경찰 빽차에서 나오는 사이렌소리가 연일 교정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입생들은 선배들을 따라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다.  선배들은 람보처럼 재빨리 자리를 피해 한명도 백골단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신입생 몇몇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학교를 휴학하고 군대로 끌려간 신입생도 있었다.   81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학교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이 때문에 81학번 신입생 단합대회는 입학하고 한참이 지난 5월에나 열리게 되었다.  단합대회는 개성 강한 학생들이 모인 까닭에 한바탕 홍역을 치루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젖가락을 두들기며 장단을 맞추다가도 서로 고성이 오가며 싸움을 벌였다.  막걸리에 소주를 잔뜩마신 마신 신입생들은 삼삼오오 뭉치거나 흩어져 시장통을 배회했다.


 
    학기 내내 공부는 뒷전이었고 데모와 술에 빠져 있었다.  불안한 시국처럼 학생들은 대부분 1학년 또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로 입대했다.  2학년을 마치면 교련과목 이수에 따라 군복무 3개월 단축이라는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또 졸정제라는 제도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도 일찍 군대를 가게 만든 원인이었다.  성적이 나쁘면 졸업하지 못한다는 제도의 효과가 나타난 셈이지만,정작 학생들은 공부보다는 우선 현실을 벗어나보자는 쪽으로 변해갔다.  현실로부터의 가장 훌륭한 도피처는 바로 군대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에 분개하고 독재와 투쟁하는 대학생활을 보냈던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  그러나 군부독재의 중심이었던 군대를 현실의 도피처로 삼았던 아이러니 속의 80년대 학번들....  더 이상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인정받지 못했던 80년대 학번들.....  그러나 그들에게도 꿈은 있었고 나름대로의 낭만은 있었다.     대학가 앞 선술집에서 선배들이 강요하는 사발 그득한 막걸리를 입에 넣으며 언제나 마지막에 함께 소리높여 불렀던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추억하며 이번주 추억속으로를 마치고자 한다.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맺힐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 일찌라~! 

 

나~! 이제 가노라~! 저~!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Boston Life Story

보스턴 라이프 스토리는 보스턴 한인들의 소소한 삶을 정감있게 표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보스턴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사이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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