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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엄마의 이야기

엔지 엄마의 좌충우돌  가~드닝

​최정우

설렁설렁, 듬성듬성,  대충대충, 얼렁뚱땅…

나의 가~드닝 철학을 4자성어로, 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서 고민끝에 떠올린 의태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맘대로 , 내키는대로 하는 가~드닝에도 권태기가 찾아오고, 만사가 시큰둥해지는 시절이 있다.

긴 겨울  흙장난이  그리워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문득 바라본 창밖으로 겨울 바람이 쌩쌩 스쳐갈 때도 그렇고, 한여름 텃밭에서 와르르 쏟아져나오는 푸성귀들이 갑자기 시큰둥해질 때도 그러하다. 뭔가 새로운 것, 또 다시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올겨울,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을 따라 자리를 옮기며 읽은 두 권의 책 덕분에 나는 그 지난한 겨울을 견뎠다. 둘다 사진이 많은 책이라 맘에 드는 사진 위에 눈길을 머문채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면 짧은 겨울 해가 훌쩍 기울어 있곤 했다.

먼저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은 시인 박남준이 지리산 어느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어 가꾼 것들로 차려낸 밥상 이야기이다. 관값 300만원만 달랑 통장에 넣어두고 사는 시인의 배포를 나는 감히 이해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지만, 그가 손님을 위해 차려내는 소박하고 진솔한 밥상만은 따라해보고 싶다. 늙은 호박을 따서 씨를 파내고 늦가을 햇살에 꾸덕꾸덕 말린 놈을 성겅성겅 썰어 밥에 얹어 구수한 밥을 짓고, 양념간장 넣고 슥슥 비벼먹으며 힘든 속내를 털어놓는 대신 말없이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는 그런 밥상 말이다. 거기에 동동주 한잔 곁들이면 딱 좋겠다 생각하니, 이참에 술을 빚는 법도 배워볼까 하는 도를 넘는 욕심까지 내게 하는 책이었다.

또 한권의 책은 ‘타샤 튜더의 정원’이라고 번역하면 좋을 법한 책이다(한국어판도 나와 있다고 들었다).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 꽃으로 가득찬 정원에 깡마른 할머니가 꽃을 꺽고 있는 사진에서 딱 멈췄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보기 좋았는지 모르겠다. 딱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산 사람답게 손마디가 굵고,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소진하며 사는 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앙상함에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거대한 업적에 마음을 빼앗기기엔 벌써 소심해진 것일까, 나는  이제 주어진 터전에서 볕좋은 날 씨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수고한만큼 거두는 단순하고 정직한 삶을 꿈꾼다. 그 작은 삶의 반경을 스치고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간혹 손을 내밀고 어쩌다 따뜻한 밥한끼를 나누는 그런 삶말이다.

그렇게 살고 있는  누군가의 풍경이 나의 긴 겨울을 지켜주었다.

Boston Life Story TV

보스턴 라이프 스토리는 보스턴 한인들의 소소한 삶을 정감있게 표현하여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보스턴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사이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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