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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엄마의 이야기

엔지 엄마의 좌충우돌  가~드닝

​최정우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중

 

삼월의 마지막 날, 내리는 눈을 오롯이 맞고 있는 크로커스를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시가 생각났다. 해마다 크로커스는 봄기운에 제일 먼저 기지개를 켰다가, 느닷없이 몰아닥친 찬바람에 스러지고야 만다. 너무 재발라서 모진 바람을 맞고야 마는 안타까운 꽃. 그래서크로커스는 특별하다.

긴 겨울이 끝나는 걸 제일 먼저 알려주고는, 금세  스러져버리는 꽃이니까. 왠지  아테네의 승전보를 전하고 그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어린 병사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로코스는 너무 일찍 피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 여린 꽃잎으로 눈을 맞고 있다.

크로커스는 이렇게 이른 봄에 피는 것도 있지만 가을에 피는 것도 있다. 흔히 샤프란이라고 불리는 귀한 향신료는 가을에 피는 크로커스의 암술만을 채집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크로커스와 함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또다른 꽃은 스노우 드랍!  하얗고 자그마한 꽃송이와 잘 어울리지만 왠지 슬픈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아마도 드랍, 이라는 단어가 눈물 방울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다 보니, 그에 얽힌 전설도 많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나쁜 겨울 마녀와 봄 아가씨의 이야기다.

어느 해, 겨울 마녀는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이 땅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결국 봄아가씨는 물러나지 않는 겨울 마녀와 한판 대결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겨울 마녀의 힘은 막강했고, 봄 아가씨는 마녀의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마녀가 기쁨에 겨워 승전보를 울리려는 순간, 봄 아가씨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으로 덮혀 있던 땅을 녹이며, 그 곳에서 하얀 꽃이 피어올랐단다. 결국 봄 아가씨의 승리!

 

아무리 힘세고 노련한 겨울도 살강살강 다가오는 어린 봄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니…

 

해마다 이 작고 여린 꽃들은 그렇게 어찌할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자연의 이치, 시간의 순리를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아주 잠깐 피었다가 지는 이 꽃들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크로커스와 스노우 드랍은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기르기에 좋은 꽃들이다. 둘다 그라운드 커버로 심어도 좋은데, 스노우 드랍은 그늘진 곳에 심는게 좋다.

두꽃 모두 가을에 구근을 심으면 이듬해엔 꽃을 볼 수 있다.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할 건 크로커스 구근은 동물들이 좋아한다는 것! 그러니 조금 넉넉하게 심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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